[기고칼럼] 바쁘면 법을 어겨도 괜찮다? 황당한 감사원
[기고칼럼] 바쁘면 법을 어겨도 괜찮다? 황당한 감사원
  • 신아일보
  • 승인 2017.04.3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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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국장

 
휴대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전화와 문자는 물론 뉴스도 보고 쇼핑도 하고 은행업무도 쉽게 할 수 있다. 이젠 휴대폰 없는 세상은 상상이 안 된다. 휴대폰을 개통하거나 사용할 때 SKT와 KT, LG U+ 등 주로 이동통신 3사 중 1곳을 이용한다. 그러나 여러 통신사와 연계되거나, 이용자 권리와 직결된 중요한 내용은 정부가 관련법에 따라 직접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명의도용방지와 부정가입방지, 분실도난휴대폰 관리 등이 그것이며, 정부조직 중에서 가장 거대한 미래창조과학부가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미래부는 이러한 공적업무를 한국통신진흥협회(KAIT)에 위탁해서 처리하고 있다.

한국통신진흥협회는 이름만 보면 정부기구나 공공기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SKT와 KT, LG U+ 등 이동통신 3사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단말기 제조사 등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이익단체이다. 한국통신진흥협회는 미래부로부터 다양한 업무를 위탁 받고 있으며, 매년 업무위탁 외에 700억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민간기관이나 업체에 업무를 위탁할 때 적용되는 기준과 원칙이 있다. 그것이 대통령령인 '행정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정부가 민간업체에 위탁을 할 경우에 중요한 원칙이 있다. 첫째, 위탁 목적과 비용, 위탁기간, 책임과 의무가 적힌 계약을 체결해야 하고, 둘째, 정부가 민간위탁기관을 지휘·감독하고 매년 1회 이상 업무를 잘 처리했는지 감사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한국통신진흥협회는 위탁업무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로 구성된 이익단체다. 당연히 감사원은 공정하고 적정하게 업무를 하고 있는지 지휘·감독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확인 결과, 미래부는 한국통신진흥협회와 위탁을 하면서 계약도 체결하지 않고, 지휘·감독도 엉망이고 단 1차례의 업무감사도 하지 않았다. 법을 어기고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이에 경실련은 지난 2월 23일 감사원에 미래부의 직무유기에 대해 공익감사청구를 했다. 그러나 2달 후 감사원이 통보한 결과는 미래부의 직무유기보다 더 경악스러웠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단 1번의 업무감사를 하지 않아 법을 어겼지만 봐주겠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보내온 내용을 자세히 보면 분노를 넘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은, 민간위탁이긴 하지만 법적위탁과 지정위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용도 불분명하고 아무런 법적근거 없는 법적위탁과 지정위탁이란 용어를 사용해, 법에서 정한 의무를 안 해도 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업무감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핑계는 더욱 가관이다. 거대 공룡부처인 미래부의 인력이 부족해서 못했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바쁘면 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면죄부를 준 것이다. 전형적인 제식구 감싸기다.

제도적으로 감사원 감사결과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번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명분도 없고 잘못됐다. 이제 며칠 있으면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다. 감사원이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정치적 판단과 정권의 눈치를 본다면 미래는 없다. 이 기회를 계기로 감사원이 거듭나고, 민간위탁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되기를 희망한다.

/윤철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