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가을 같지 않았다. 여름에 가까운 ‘더운 가을’이었다. 더운 가을이 찾아온 이유는 고기압 영향 탓이다. 보통 추석 즈음에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데 지난 추석 때는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연휴 내내 열대야와 함께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전국에 기상 관측망을 확충한 1973년 이래 가장 더운 9월이었다.
올해 우리나라는 이동성 고기압 영향권에 자주 놓이면서 늦가을인 11월 중순까지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한동안 ‘올해는 가을이 없나봐’라는 말이 입 밖으로 자주 나왔다. ‘바바리코트’ 깃을 세워야 할 늦가을임에도 이번 가을 쇼핑은 포기했다. 당장 트렌치코트를 사도 한두 번밖에 못 입고 옷장으로 들어갈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 올 가을 옷을 사는 수요는 확 줄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의복’ 관련 거래액은 4조5123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1% 감소했다. 3분기 기준 거래액이 감소한 것은 코로나19가 한창인 2020년(-0.7%) 이후 처음이다.
이런 탓일까. 패션업계 3분기 실적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졌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3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5%, 영업이익은 36% 급감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3분기 매출은 6%, 영업이익은 65% 감소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역시 같은 기간 매출은 7%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149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LF가 그나마 패션 대기업들 중에선 선방했다. 매출 4810억원, 영업이익 538억원으로 각각 지난해 동기보다 15%, 272% 성장했다. 다만 LF도 올 1~3분기 통틀어 패션 부문 누적 매출을 살펴보면 1조12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8%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한 덕분이다.
기상청이 올해 역대급 겨울 한파가 올 것이라는 전망을 하면서 패션업계는 일찌감치 겨울옷 판매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전망은 뒤바뀌었다. 기상청이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이어지는 겨울 시즌이 예년보다 포근할 것이라고 관측을 바꿔 발표한 것이다. 패션업계가 가을 장사에 이어 겨울 장사까지 망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패션업계는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겨울철 의류 판매를 늘려 실적 반등을 꾀하려고 했지만 기상청의 바뀐 관측대로라면 이마저도 어려워 보인다. 겨울에 최대한 이윤을 남겨야 내년을 버틸 수 있는데 막막한 모습이다. 패션업계도 이상기후에 재빠른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신사업 발굴 등 사업 다각화도 시급하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건 본업 경쟁력이다. 상품 기획을 관행대로 해왔던 S/S(봄·여름), F/W(가을·겨울) 공식이 아닌 기후변화에 맞춰 사계절 ‘시즌 리스’로 전환하는 등의 대응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