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으로서 의뢰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게 된다.
"억울하면 재판 가서 판사에게 이야기해라"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억울함을 끝까지 호소해서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무죄판결을 받으면 억울함이 충분하게 풀리는 것일까?
대검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3년을 기준으로 1심 재판에서 무죄율은 0.92%이고, 2심 재판에서의 무죄율은 1.38%다.
모든 사람이 무죄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죄율만으로 실제 무죄가 나오는 확률을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기소가 된 이상 무죄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은 통계만으로도 알 수 있다. 실제 경험상으로도 그렇다.
무죄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험난한 여정을 겪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다.
처음 경찰에 혐의사실이 있다고 사건이 접수된 이후, 경찰 조사와 검찰 조사를 거쳐서 두 차례 무혐의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후 검찰은 사건을 기소해 재판으로 이어졌으며 재판 과정에서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치열하게 다툰 끝에서야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아무리 짧아도 1년 이상은 걸리는 긴 여정이다.
실제로 얼마 전 최종 무죄 판결이 확정된 의뢰인이 있었다. 수사 단계에서부터 1심 재판까지 유죄로 판단을 했지만 2심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이 바뀌었고, 최종적으로 무죄라는 판결이 확정된 사례였다.
무죄판결이라는 결과에 내 일처럼 기쁜 마음으로 연락을 드렸지만 의뢰인은 너무 오랜 시간 수사, 재판을 받다 보니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고, 기쁨보다는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은 시간에 대한 상실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억울함은 풀렸겠지만 실제 의뢰인의 삶은 너무나도 망가졌고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버린 것이다.
이처럼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국가는 형사소송법 제194조의2에 따라 무죄판결에 따른 비용을 보상해 줘야 한다.
하지만 실제 보상 비용은 재판 과정에서의 변호사 보수에 한정되며 이마저도 국선변호인의 보수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 시간, 비용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과연 재판에까지 이르러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억울함이 풀려 시원하고 기쁜 마음뿐일까?
형사법에는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격언이 있다.
내가 억울한 한 사람이 됐다고 조금만 상상해 보더라도 이 격언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무죄판결로 억울함이 밝혀지는 것은 다행이나 그 이전에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절차와 기회도 충분히 있다.
물론 완벽한 수사를 통해 확실한 범죄자만을 기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한 번쯤 더 귀를 기울여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무죄 판결을 선고받은 사람들에 대한 형사보상 제도 또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가 조명하지 못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이 많다. 변호사로서 그중 한 가지에 대한 고민을 나눠 보고자 했다.
필자 또한 바라보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점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각자의 시선에서 문제를 제기해 준다면 더 나은 사회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