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10마리로 시작해 굴지의 재계 30위권 대기업을 일궈낸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인물로 꼽힌다. 그는 육계(고기 닭) 사업을 시작으로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하며 축산업 최강자로 발돋움하고 유통과 해운까지 사업을 빠르게 넓혔다. 닭고기 ‘농장주’에서 ‘회장님’으로 입지전적한 스토리를 가진 그다.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공개 석상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라면을 끓였다.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 ‘더(THE) 미식 장인라면’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김 회장은 축산업에 편중된 식품사업을 확장하고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고자 ‘가정간편식(HMR)’을 미래 먹거리로 삼았다. 이를 위해 전북 익산에 생산공장 ‘하림 퍼스트 키친(First Kitchen)’을 조성했다. 더 미식 장인라면은 여기서 탄생했다.
김 회장은 하림을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키우기 위해선 국내외 모두 통할 수 있는 상품이 필요하단 판단에 더 미식 브랜드의 첫 상품으로 라면을 택했다. 라면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서도 역대 최고 수출액을 2년 연속 갈아치운 효자 품목이다.
하지만 닭고기 회장님이 손수 끓인 그 라면은 출시 때부터 논란을 만들었다. 가격이 가장 큰 문제였다. 장인라면은 개당 2200원(봉지면)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라면·진라면 등과 비교해 많게는 3배까지 차이 난다. 업계 1·2위 농심과 오뚜기의 프리미엄 라면보단 30%가량 더 비싸다.
또 프리미엄을 표방했지만 제품 패키지는 ‘언밸런스’하다. 낡은 양은냄비에 라면이 담긴 모습을 홍보 컷으로 썼는데 서로의 이미지는 충돌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가 보기에도 의아하지 않을까 싶다. 콘텐츠 ‘오징어게임’으로 요즘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를 메인 모델로 썼다한들 제품 얼굴인 패키지에선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려운 이유다.
하림은 순수 자연재료를 가지고 20시간 끓인 ‘진짜 국물’로 만든 ‘라면 요리’란 점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원가 경쟁력은 뒤지지만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프리미엄을 고집한 ‘차별화’이자 ‘도발’일 수 있지만 업계 이해가 부족한 ‘무지’이자 ‘무모함’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 판단은 소비자와 시장의 몫이다.
김홍국 회장의 장인라면은 곧 출시 100일을 맞는다. 하림은 장인라면이 출시 한 달간 300만봉 팔렸다고 홍보했다. 라면업계에선 나쁘지 않은 스코어(성적)로 본다. 다만 신제품 판매는 출시 1개월과 100일, 6개월 주기로 흐름을 살펴본다고 한다. 출시 한 달은 프로모션 영향이 크단 점을 감안할 때 100일 전후의 판매 흐름이 중요하다.
현재 하림 장인라면은 출시 초기와 달리 낮은 재구매율과 다양한 대체재로 판매 흐름이 썩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반응도 미적지근하다. 그 사이 장인라면 출시를 이끌었던 하림 대표는 임기 2년을 훨씬 남기고도 돌연 옷을 벗었다.
일각에선 더미식 장인라면이 앞서 출시된 하림의 즉석밥 ‘순수한밥’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하림 순수한밥 역시 100% 쌀과 물만으로 지은 점을 강조하며 가격 면에서 프리미엄을 표방했다. 이 제품은 출시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시장점유율이 0.1% 남짓에 불과하다.
김홍국 회장은 평소 나폴레옹을 동경한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도전’과 ‘개척’의 아이콘이지만 고집 센 ‘독불장군’ 이미지도 크다. 승승장구했던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장기전 대비 없이 단기전만 생각하며 식량 보급 등을 부실하게 한 결과 패전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김 회장의 이번 신사업이 성공적인 개척으로 기억될지 아쉬운 오판으로 남을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