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스’ 사태로 촉발된 홍원식 회장과 사모펀드 한앤컴퍼니(한앤코) 간 경영권 다툼이 1년 6개월가량 이어지고 있다. 다음달 9일 이와 관련한 2심 선고 결과가 나온다. 법원은 앞서 지난해 9월 열린 1심에서 한앤코 손을 들어줬다.
2021년 5월 홍 회장 일가는 지분 53% 가량의 경영권 지분을 3107억원에 한앤코로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60여년의 역사, 매출 1조원 이상을 기록했던 국내 대표 유업체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해 7월 경영권 이전을 위한 임시주주총회는 열리지 않았다. 양 측은 계약 당시만 해도 ‘새로운 남양’에 뜻을 모았지만 아직도 ‘상처뿐인 남양’이다. 경영권 다툼 속에서 남양의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의 늪에 빠졌다. 회사 직원들의 자존심도 크게 다쳤다.
2심을 앞두고 여론은 1심에서 승소한 한앤코에 좀 더 우호적이다. 그동안 홍 회장과 남양유업에 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 영향이 컸을 것이다. 대리점 갑질, 외조카 마약 파문, 경쟁사 비방 댓글 등 악재들이 홍 회장과 남양을 둘러싼 까닭이다.
2심을 맡은 법원은 벌써부터 결정을 내린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법원은 최근 항소심 변론기일에서 홍 회장 측이 요청한 증인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건을 ‘신속히’ 종결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홍 회장 측은 지난해 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면서 본인과 한앤코 간 쌍방대리를 맡은 김앤장 변호사 등을 1심에 이어 재차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 회장 측이 이의를 제기한 추가 증거의 합당성이 없다는 게 더욱 설득력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쌍방대리는 계약 당사자의 법적 대리를 동일한 대리인이 모두 맡아 계약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외 모두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쌍방대리가 매도인, 매수인 대리인이 동일할 경우 어느 한 쪽의 이익 또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있는 만큼 통상적인 M&A(인수합병)에서는 금한다. 민법 124조, 변호사법 31조에서도 명문화됐다.
홍 회장 측은 한앤코와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중개자 함춘승 피에이치앤컴퍼니 사장에게 추천받은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한앤코 역시 김앤장의 다른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홍 회장은 김앤장이 양쪽의 쌍방대리였다는 점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한앤코는 사전에 내용을 알렸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홍 회장 주장이라면 계약 자체는 무효다. 한앤코는 쌍방대리가 아닌 쌍방자문, 또 이를 시장 관행이라고 얘기한다.
법원은 1심에서 쌍방대리를 맡았던 변호사들을 ‘대리인’이 아닌 ‘사자(使者)’로 판단하면서 홍 회장 측의 쌍방대리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자는 뜻 그대로 명령이나 부탁을 받고 심부름하는 사람이다. 단순 심부름꾼으로 본 것이다. 3000억원을 웃도는 M&A 규모에 국내 최대 로펌 변호사들이 개입했다. 그럼에도 2심 법원은 이와 관련한 추가 증거를 거부했다. 1심과 비슷한 결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비단 남양유업 외에도 과거 2003년 진로-골드만삭스, SK-소버린의 경영권 분쟁에서도 쌍방대리가 불거졌다. 이들 사건도 다각도로 논란이 컸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쌍방대리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M&A가 빈번해진 시대에 쌍방대리 논란은 늘 잠재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남양유업의 쌍방대리 판단은 법원의 몫이다. 다만 신속한 판결도 중요하지만 더욱 신중하면서 예리한 접근이 우선돼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