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공통점이 많거나 두 사건 사이에 상당한 연결고리가 있을 때 ‘평행이론’이란 말을 쓰곤 한다. 이 말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두 사람의 운명 또는 생활 패턴이 거의 똑같이 흘러간다는 뜻이다. 평행이론의 대표적 사례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Lincoln)과 35대 대통령 케네디(Kennedy)를 꼽는다. 이들의 몇 가지 평행이론 근거 중에는 다소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느낌도 분명 있지만 이들의 닮은 행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뭇사람들의 화젯거리가 됐다.
우리 법조계에서는 20년 전에도 현재도 평행이론처럼 진행 중인 이슈가 있다. ‘쌍방대리’ 논란이다. 쌍방대리는 계약 당사자의 법적 대리를 동일한 대리인이 모두 맡아 계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법무법인이 양측의 법적 대리 활동을 할 경우 이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하면서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쌍방대리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우리 민법에서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업 경영권 분쟁에 따른 쌍방대리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20년 전인 2003년에는 ‘SK-소버린자산운용’과 ‘진로-골드만삭스’가 대표적 예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남양유업-한앤컴퍼니(한앤코)’ 사안이 논란 한 가운데에 있다. SK-소버린의 경우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A로펌이 소버린 주식취득 신고를 대행해준 것이 문제가 됐다. 소버린은 당시 SK 지분을 14.99% 사들였는데 15%가 되면 SK가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돼 주력이었던 SK텔레콤 의결권이 축소되는 상황이었다. 진로-골드만삭스 건도 비슷하다. 화의 신청을 한 진로 채권을 매입해 최대 채권자가 된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법정관리 신청을 냈는데 B로펌이 이를 대리했다. 알고 보니 B로펌은 진로 화의와 구조조정 업무도 대리한 상황이었다. 동일한 로펌이 서로 적대적인 양측을 모두 대리한 셈이다. 두 사건의 로펌은 사실 같은 곳으로서 국내 최대 로펌 집단이다. 둘 다 무혐의 처분됐지만 이해관계가 갈리는 쌍방을 자문·대리하는 것에 대한 논란은 한동안 지속됐다.
지금의 남양유업-한앤코 재판도 쌍방대리 논란이 불거진 사례다. 경영권 인수를 두고 남양유업 오너인 홍원식 회장 측과 사모펀드 한앤코는 동일한 C로펌 변호사를 각각 대리인으로 선임했다. 홍 회장 측은 C로펌이 양측의 쌍방대리였다는 점을 몰랐다고 주장한다. 한앤코는 사전에 내용을 알렸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쌍방대리는 매도인, 매수인 대리인이 동일할 경우 어느 한 쪽의 이익 또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할 우려가 있어 M&A(인수합병)에서는 통상적으로 금한다. 민법 124조, 변호사법 31조에서도 명문화됐다. 홍 회장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한앤코는 쌍방대리가 아닌 쌍방자문으로서 시장 관행이라는 얘기를 한다. 공교롭게도 C로펌은 20년 전 SK와 진로 쌍방대리 논란 때의 로펌과 같은 곳이다.
법원은 남양유업-한앤코 건을 두고 1심과 2심 모두 한앤코 손을 들어줬다. 쌍방대리를 맡았던 변호사들을 ‘대리인’이 아닌 ‘사자(使者·심부름꾼)’로 판단한 영향이 컸다. 홍 회장 측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최근 심리 속행이 결정됐다. 결국 대법원이 쌍방대리라는 쟁점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판단할지가 관건이 됐다.
쌍방대리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업계는 물론 국민들의 시선도 썩 곱지 못하다. ‘단순 자문’이라는 모호한 해석으로 법망을 피해가는 듯한 로펌, 쌍방대리를 명확히 규정짓지 못하는 법원에 대한 실망감이 큰 탓일 거다. M&A가 빈번한 시대에 쌍방대리 논란은 늘 잠재할 수밖에 없다. 또 적지 않은 대형 로펌들이 쌍방 자문을 관례처럼 여기고 있다. 대법원이 남양유업-한앤코 사안을 면밀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쌍방대리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명확한 ‘잣대’를 제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쌍방대리 논란의 평행이론은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