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오답노트 작성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항상 실수는 같은 부분에서 나왔고 동일한 유형의 문제를 틀릴 때마다 '아 오답노트 작성해둘걸'이란 후회를 반복했다.
한 번은 마음을 다잡고 오답노트를 기깔나게 만들어봤다. 전에 쓰던 노트가 남았음에도 새 노트를 사선 빨간색 파란색 볼펜에 형광펜까지 써가며 열심히 오답을 정리했다.
그러다보니 한 문제에 대한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데에만 수십분이 걸렸다. 그래서 적정한 시간이 나지 않는 날엔 '완벽을 추구한다'는 나만의 합리화로 '하루 날 잡고 제대로 다 해야지'라며 무기한 미루기 시작했다.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오답지는 늘어만 갔고 결국 다 정리하지 못한 채 본 시험의 결과는 역시나 '똑같은 실수 반복'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오답노트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그저 틀린 원인을 빠르고 쉽게 마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틀린 문제 부분을 찢어서 한 노트에 쭉 붙이고 틈마다 왜 틀렸었는지를 머릿속에 담는 데에 집중했다.
문제는 늘 같은 틀에서 조금씩만 변형되기 마련이었기에 오답노트는 실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을 확실히 줄여줬다. 그런데도 정말 어렵고 몰라서 틀리는 '킬러 문항' 외에도 오답이 늘 한두개씩 더 나왔다. 그 이유는 애초에 틀린 원인을 '내 쪼대로' 잘못 분석했던 데에 있었다. '내 쪼대로'가 제대로가 되기 위해선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평소에 귀담아 듣고 나의 판단력을 높여야만 했다.
국민의힘의 22대 총선 오답노트인 총선백서가 28일 공개됐다. 총선 참패 이후 201일 만이다. 오답노트의 제목은 '마지막 기회'이다.
오답노트가 너무 늦게 나온데 반해 분석을 '치밀하게' '잘' 했는지에 대해선 다소 찝찝함이 느껴졌다. 백서를 보는 내내 '그래서 참패 책임이 누구에게 얼마나 있다는 건가'라는 의문은 계속됐다. 과연 이 오답노트로 다음 번의 실수를 막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백서에서 참패 핵심 요인으로 꼽은 '불안정한 당정관계'는 총선 국면 때부터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불안정한 당정관계'는 지금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백서가 그저 '오답노트 만들어내기'에 그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평가는 백서가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다음 시험 때까지 끼고 살며 마주해도 부족할 백서를 외면하겠다는 건 아닌지 괜히 마음이 답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