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장벽 강화, 반도체법·IRA 폐지 예고…수출 중심 업종 흔들
보호무역주의 끝판 왕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4년 만에 백악관에 재입성 했다. 유세 과정에서 자국중심주의 발언을 쏟아낸 만큼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상당수 업계가 긴장 중이다. 하지만 일부 업종은 새로운 기회를 기대하며 엇갈린 희비를 보인다. <신아일보>는 트럼프 폭풍을 맞은 산업계를 각 분야 업종별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산업계에 미칠 리스크와 그 방안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도널드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한국 산업계의 명암이 교차된다. 한화와 HD현대로 대표되는 방산업종과 조선업종은 호황이 기대된 반면 삼성과 포스코로 대표되는 반도체업종과 철강업종은 리스크에 직면했다.
1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강력한 보호무역을 천명,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할 전망이다. 특히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60%의 추가관세 적용을 예고했다.
자동차·철강·해운업계는 관세 리스크가 크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 무역확장법 232조와 함께 보편 관세를 적용, 추가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공장을 통해 관세 부담을 일부 축소한다는 전략이다.
철강업계는 관세인상으로 인한 중국의 밀어내기 수출 심화와 한국에 대한 쿼터제 강화로 타격이 전망된다. 중국산 철강 제품의 우회수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생산공장 매각 및 중단에 나서면서 비용절감 전략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해운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를 인상하면 전 세계 해운 수요가 약 1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HMM은 컨테이너선을 주로 보유해 관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HMM은 2030년까지 벌크 선대를 1256만DWT(110척)까지 확장하는 등 사업다각화로 리스크를 분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중소기업들도 수출 시장 다변화와 디지털 전환 같은 전략적 변화가 요구된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은 미국 시장 진출 촉진, 동남아‧멕시코 등 대미 수출 플랫폼 활용, 대기업과 협력 확대가 대응 방안으로 제시됐다. 조선‧원자력‧AI와 같은 특정 산업군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약가 인하 정책과 생물보안법 같은 새로운 규제에 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반도체법과 IRA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만큼 반도체와 배터리 업계도 불안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미국에 각각 64억달러, 4억5000만달러 혜택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 측은 “바이든 행정부가 낭비성 보조금을 신속하게 내보내고 있다”며 “막바지 수법을 모두 재검토하고 면밀히 조사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터리 업계의 경우 IRA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미국) 보조금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며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축소 우려에 대해 일축했다. 이석희 SK온 사장도 “급격한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전과 항공, IT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의 행보에 예의주시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미 가전업체 월풀의 청원을 받아 가동한 ‘세탁기 세이프가드’에 대응해 미국 내 생산거점을 마련했다. 현재 세탁기와 건조기를 제외한 나머지 TV, 냉장고, IT 제품을 멕시코 등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멕시코산 규제가 현실화되면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미국 공장에서 생산품목 확대카드가 남아있다.
항공업계는 트럼프 재집권으로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국내 항공사 경영에 불리할 전망이다. 저비용항공사(LCC)는 보유한 항공기 대부분을 리스 중인데 리스비를 달러로 지급하는 만큼 환율이 오르면 손실이 커진다. 그러나 국제유가 하락은 긍정적인 영향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석유 채굴을 늘려 국제유가를 낮추면 항공사들의 실적이 상승할 수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1달러 내리면 약 3100만달러(약 432억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방산과 조선은 수혜산업으로 꼽힌다. 방산업계는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 육군이 추진하는 자주포 현대화(SPH-M) 사업의 후보로 참여해 지난달 K-9 자주포의 성능을 시험했다. LIG넥스원의 대함 유도로켓 비궁도 미국 수출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국 고등훈련기(UJTS) 사업 수주에 참여할 예정이다.
조선업계는 트럼프 당선인의 ‘러브콜’을 받고 한미 협력에 대한 기대가 커진 상황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연 20조원 규모의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됐다. 한화오션은 미국 MRO 사업을 연달아 2건 수주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동관 부회장까지 사업장에 방문해 힘을 실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필리핀 해군 MRO 실적을 바탕으로 미 해군 발주 사업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IT분야는 트럼프 재집권으로 경쟁판도가 흔들린다. 트럼프 당선자는 AI 규제완화 정책으로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유리한 경영환경을 제공할 전망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독자적인 기술 강화와 생태계 구축을 중심으로 생존 전략을 찾을 계획이다. 네이버는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X'를 중심으로 생성형 AI와 B2B 솔루션을 포함한 폭넓은 기술 라인업을 강화하고 1조원 규모의 투자로 AI 생태계와 인재 육성에 나선다. 카카오는 관계 중심 AI 비서 '카나나'를 개발해 사용자와 AI 간의 신뢰와 감정을 연결하며 글로벌 규제 흐름에 대응할 'AI 안전성 이니셔티브'를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