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행장 승진자 5명 중 1명도 상고 졸업
은행권 ‘상고 신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고졸 출신 신임 행장이 취임한 데다, 차기 대권을 노릴 수 있는 부행장급 인사에서도 상고 출신들이 다수 포진하면서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지주와 은행은 고졸 신화가 가장 많은 화이트칼라 직업군으로 유명하다. 한때 덕수상고나 선린상고 등 명문 상고 출신들이 승승장구하며 금융계를 호령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은행권 현역 최고경영자(CEO) 중 살펴보면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상고 출신으로 입행해 행장, 회장까지 영전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진 회장은 덕수상고, 함 회장은 강경상고를 각각 졸업했다.
올해 취임한 이호성 하나은행장은 대구 중앙상고 출신으로 고졸 신화를 쓴 영업통이라는 점에서 함 회장과 닮은꼴로 평가받는다.
전임 CEO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라응찬 전 신한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해 신상훈·이백순 전 신한은행장, 강신숙 전 Sh수협은행장 등 국내 금융권에 이름을 날린 상고 출신 인물이 다수 있었다.
CEO뿐만 아니라 기업의 ‘별’로 통하는 임원진에도 고졸 출신 인사가 상당수다. 일례로 지난 2019년 기준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 시중은행 상무급 이상 임원 101명 가운데 상고 출신 임원은 26명으로 25.7% 비중을 차지했다. 은행 임원 넷 중 한 명이 고졸 신화를 써내고 있는 셈이다.
은행 임원진 내 고졸 출신 비중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지만,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4대 은행 부행장 승진자 22명 가운데 상고 출신 인사가 총 4명 발탁됐다.
윤준태 국민은행 여신관리심사그룹 부행장과 고덕균 국민은행 강남지역영업그룹 부행장은 덕수상고를 졸업했다. 서유석 하나은행 기업그룹 부행장은 대전한밭상고, 강대오 신한은행 자산관리솔루션그룹 부행장은 광주상고 출신이다.
은행권에서 상고 신화가 유독 많은 이유는 과거 시대상과 관련이 있다. 국내 은행은 1970~1990년대 고졸 출신들에게 채용문을 열었다.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 등을 이유로 상고 등을 졸업 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은행으로 곧장 취업하는 인재들이 많았다.
특히 덕수상고·선린상고·경기상고·서울여상 등 명문 상고 졸업자들은 은행권 취업이 사실상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입행한 상고 출신 행원들은 능력 면에서 대졸 행원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남성 고졸 출신들은 입행 이후 1~2년 근무하다 군 복무를 마치면 그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돼 승진 등에서 유리한 점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해당 시기에 입행한 이들은 내부경쟁을 뚫고 승진을 거듭하면서 상당수가 요직에 오른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학업도 병행하며 학사 이상 학위를 얻어 본인의 경력과 가치를 높인 경우도 많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전에 상고 졸업생들이 은행에 많이 입행한 만큼, 지금까지 근무하는 인원도 상당수”라며 “향후 몇 년간은 상고 출신 경영진이 지속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