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병을 앓고 있던 근로자가 해외 연수 도중 병이 악화해 사망했을 경우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3일 서울고등법원 행정11부(김동오 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평소 뇌전증 기저 질환을 앓고 있던 A씨는 B중앙회에서 근무하던 중 2015년 11월 3박5일 일정으로 회사 해외 연수를 떠났다.
연수 중 A씨가 바닥에 쓰러진 채 발견됐고 곧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이에 A씨의 배우자는 이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측은 연수에서 A씨 사망을 유발할 만한 정도의 돌발 상황이나 급격한 작업환경 변화, 업무상 스트레스 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를 거부했다.
뇌전증 등 기존에 갖고 있던 지병이 경과적으로 악화해 발병한 것이지 연수에 의해 발병한 게 아니라고 본 것이다.
거부당한 A씨 측은 소송을 냈고 1심은 근로복지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A씨 측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연수는 업무와 직접 연관이 없는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한 해외 연수”라며 “A씨가 자원에 연수에 참여한 점 등을 볼 때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원고가 A씨가 이른바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 발생해 심장질병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입증한 구체적,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봤다.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란 좁고 불편한 비행기 일반석에서 장시간 비행하면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이것이 오래되면 혈액응고로 사망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증후군이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업무와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따질 때는 평균인의 관점이 아닌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이런 시각에서 2심 재판부는 A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A씨는 오전 7시 무렵 집에서 출발에 근무한 후 오후 6시 퇴근해 10시께 취침하는 생활을 30년간 해왔다”며 “해외를 나가본 적이 없는 A씨의 근무 여건에 있어 이번 연수 일정은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이며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A씨가 연수 일정에 참여하는 것이 근무한 것으로 인정됐던 점 등을 볼 때 당시 연수는 업무 중 일부였고, 연수 일정에 따른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로 뇌전증 전신발작을 일으켰다는 점이 분명한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