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늘면서 4400여만병 유통…국산보다 10배 이상
'농가 상생' 외치지만 영세한 국산 와인농가는 외면
국산 와인을 생산하는 농가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대형마트는 ‘농가와의 상생’을 외치고 있지만, ‘초저가 와인’ 경쟁으로 수입산 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한 탓이 크다.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초저가 와인 경쟁이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국산 와인농가는 외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오랜 소비침체와 함께 이(e)커머스와의 경쟁에서 뒤지고 있는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채널에서 강점으로 꼽을 수 있는 ‘주류’ 마케팅을 대폭 강화하면서 4900원 와인, 1.5리터(ℓ) 7900원 와인 등 초저가 수입산 제품을 대량으로 공수하고 있다.
이마트는 최근 10월17일부터 일주일간 와인장터를 운영하고, 1만원 이하 초저가 가성비 와인을 지난해보다 40% 늘린 25만병을 준비했다. 이는 같은 기간 판매한 전체 와인행사 물량의 40% 수준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국민가격’을 앞세운 4900원 에브리데이 ‘도스코파스’ 와인(병당 750밀리리터)은 출시 70일 만에 70만병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
그 결과 이마트의 올 9월까지의 1만원 이하 와인 매출 비중은 19.7%로 지난해 13.9%와 비교해 6% 가까이 급증하며, 전체 와인매출에서 1만원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마트 계열인 트레이더스도 마찬가지로 10월1일부터 전국 매장에서 이탈리아 와인 ‘투보틀 모스카토’를 지난해보다 10배나 늘린 30만병을 확보해 두병 당 9980원에 판매하고 있다. 투보틀 모스카토의 경우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1년간 37만병이나 소비된 제품이다.
롯데마트 역시 업계 최초로 선보인 매그넘(Magnum, 1.5ℓ) 사이즈의 페트병(PET) 와인을 지난달부터 기존 판매가인 9900원에서 7900원으로 더욱 낮춰 올 연말까지 공급할 계획이다. 병당 3950원꼴에 불과하다.
롯데마트의 매그넘 와인은 2012년 도입 이후 매년 4~5만병이 판매됐는데, 올해의 경우 가격경쟁력을 높인 만큼 이보다 많은 물량이 소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초저가 와인 마케팅 영향으로 관련 수입액도 꾸준히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과 KATI 농수산식품수출통계에 따르면 와인 수입액은 2015년 1억8980만달러(약 2229억원)에서 지난해 2억4400만달러(2866억원)로 4년 사이 28.5% 증가했다. 올 9월까지 수입액은 전년 동기(1억7880만달러, 2100억원)보다 7.0% 늘어난 1억9137만달러(2248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입물량은 2만9165톤(t)에서 3만2634t으로 12%가량 증가했다. 이를 병으로 환산하면 약 4350만병에 이른다.
반면에 국산 와인(포도주) 생산물량은 업계 추정 연평균 400만병 내외다. 수입물량의 10/1도 못 미치고 있다. 와인을 생산하는 농가 또는 영농조합의 대부분이 연간 5000병 이하의 영세한 규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주원료인 포도 생산은 잇따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미국산과 칠레산 등이 대량 수입되면서 재배면적이 줄다보니, 2015년 22만3700여t에서 올해 18만5000여t(추정치) 정도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 들어 대형마트가 ‘국민가격’, ‘극한가격’이라는 이름하에 한 병에 3000~4000원대 초저가 수입산 와인을 대거 들여와 판매하다보니 국산 와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북지역의 어느 와인산지 관계자는 “국산 와인은 직접 농가(영농조합)를 방문하거나, 지역축제 혹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구입할 수 있는데 인지도가 낮고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소비자 접점이 높은 대형마트에서 파는 수입와인에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나마 대형마트가 턱 없이 낮은 가격으로 수입와인을 판매해 지난 추석 대목 때는 전년의 1/3 수준밖에 팔리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경기지역 한 와인산지 관계자도 “대형마트가 ‘농가 상생’ 마케팅에 나서면서도, 초저가 수입와인으로 피해를 보는 국산 와인에 대한 관심은 부족한 것 같다”며 “수입산 와인 일색인 대형마트가 국산 와인농가에게도 입점 기회를 제공하는 등 상생 마케팅도 고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