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재산착취 등 어르신 피해 방지 위해 법·제도 강화
점포 폐쇄 등으로 은행 접근성이 낮은 지역의 어르신들이 이동버스와 무인점포, 우체국 등을 활용해 은행창구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어르신 고객이 보이스피싱이나 재산착취 등 금융피해 징후를 보일 때 금융회사가 직접 거래 처리를 지연하거나 거절하고, 금융·수사당국에 신고하도록 하는 등 법·제도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30일 이런 내용 등을 담은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은 고령층의 편리하고 안전한 금융생활을 지원하고, 고령사회로의 안정적인 이행을 뒷받침하는 금융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번 방안을 추진한다. 세부과제에는 오프라인 점포폐쇄에 따른 고령층 불편 최소화와 고령층 대상 금융착취 방지, 불완전판매 규제를 강화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 다양한 형태 '대체 창구' 운영
우선, 금융당국은 점포축소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이동·무인점포 및 대체창구 활성화를 추진한다. 이는 지점이 없는 지역에 사는 고령층 어르신들의 금융접근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이동점포는 현금자동입출금기기(ATM)를 갖춘 버스 등을 뜻한다. 운영은 매주 특정요일과 시간대를 정해 '금융5일장(가칭)' 형식 등으로 할 수 있다. 무인점포는 은행 직원 없이 고객이 직접 창구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점포다. 영상통화나 신분증으로 본인 인증을 거쳐, 예금이나 대출, 펀드 관련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운영 초기에 대기·상담인력(1~2인)을 배치하는 등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조치할 방침이다.
최근 점포 폐쇄·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는 대안으로 우체국을 대체창구로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현재 전국 시중은행 전체 점포 수는 6711개로, 이 중 절반은 서울·경기 수도권에 밀집돼있다. 우체국은 전국 2655개 지점이 있는데, 지역 분포가 고르기 때문에 대체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기업·산업·씨티·전북은행 4곳은 이미 우체국과 창구 제휴를 진행 중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금융당국(FCA)은 지점 폐쇄를 결정한 은행에 고령·취약계층 고객에 대한 영향 분석을 필수적으로 거친 뒤, 대체접근수단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대체접근수단으로는 영상 텔레뱅킹과 은행간 점포제휴, 이동점포 등을 인정하고 있다.
당국은 은행들의 점포 폐쇄 사전절차도 강화할 계획이다. 점포 폐쇄 시 은행이 수행하는 '지점폐쇄 영향평가'의 독립·객관성을 위해 평가 절차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검토하도록 한다. 고객 통지도 원칙적으로 폐쇄 3개월 전(현 1개월 전)에 하도록 추진한다.
또, 지점폐쇄 영향분석 등을 고려해 금융사별 '고령자 전용 모바일금융 앱'을 홍보·제공하도록 하고, 관련 실적을 주기적으로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 고령층 착취 의심거래 감시 시스템 도입
고령층의 금융피해 증가에 따라 법적·제도적 설계도 강화한다. 금융당국은 최근 들어 지인(가족·친인척·간병인 등)에 의해 재산편취를 당하거나, 불법사금융과 보이스피싱 피해를 본 고령층이 점점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낮은 피해인식과 신고율로 정확한 현황 파악과 규제, 피해구제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가 업무 중 고령자 착취 의심거래 발견 시 거래 처리를 지연 및 거절, 신고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될 전망이다.
당국은 금융회사의 원활한 적발·감시업무 수행을 위해 '고령층 착취 의심거래 감시시스템'을 도입하고, 신속한 신고조치를 위해 '금융회사-금감원-경찰 간 핫라인'을 개설하는 방안 등을 추진한다. 또, 금융기관이 성년후견인에 의한 금융착취 정황을 확인한 경우에 직접 법원에 성년후견감독인의 선임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고령층 대상 사기의심거래 발견 시 거래목적을 확인해 보이스피싱 위험을 안내하고, 이를 가족 등 지정인에 통지하는 등 거래절차도 강화한다.
이를 위한 법적 근거로 고령층 금융착취 방지 등(불완전판매 방지, 차별금지 등 포함)을 골자로 하는 '노인금융피해방지법(가칭)' 제정을 추진한다. 필요 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개정해 하위규정 제정으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금융당국은 신고근거 마련 시 금융기관의 이행부담을 고려하고, 국내외 사례도 참고해 구체적으로 법적·제도적 지원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미국 금융소비자보호처(CFPB)의 경우 '계좌 해지 등에 따른 페널티 무시', '잦은 거액 인출', '돌봄제공자나 제3자의 노인 자산에 대한 과도한 관심' 등을 금융착취 신호로 제시한다.
◇ 연령별 상품 취급실적 매년 공시
고령층 대상 불완전판매 및 차별 규제도 강화한다. 정보·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어르신의 공정한 금융거래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핵심 내용을 간소하고, 시각화한 고령층 전용 상품설명서 사용을 의무화한다. 보험권이 인포그래픽과 동영상 등을 활용한 '쉬운 보험약관' 등을 작년 10월부터 도입했는데, 이를 전 금융업권으로 확산할 계획이다.
다수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불완전판매에는 무관용원칙을 적용하고, 제재 가중 및 감면 제한도 검토한다.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 시 설명의무를 불이행한 경우에는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시행세칙에 따라 제재를 가중한다.
차별 규제는 합리적 사유가 없는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불가피한 경우 취급거절과 가격차별의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고령 고객 거래 거절 시 적절한 자·타사의 금융상품을 안내하는 '대체상품안내제도(英 Sign posting)' 도입 방안을 검토한다.
특히, 당국은 금융회사의 연령별 상품 취급실적을 매년 점검하고 주요 사항은 대외 공개할 방침이다. 업권별 협회의 비교공시 시스템 내 '고령자 전용 비교공시 시스템'도 별도로 구축한다. 또, 금융회사가 고령층 이용 비중이 낮은 온라인 특판상품을 제공할 시 이와 동일·유사한 혜택을 보장하는 고령층 전용 대면거래 상품을 함께 출시하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치매환자 등 자산관리가 어려운 고령자를 위해 전문 자산관리 후견지원신탁(치매신탁)을 활성화한다. 고령 고객이 보유 주택에 계속 거주하면서 매월 일정 연금을 받고 치매 위험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치매보험 상품도 연계 공급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급속한 고령화와 금융환경 변화 등으로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고령층 등이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 협업 하에 세부 과제들을 일관되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