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고귀한 신분’(노블리스)과 ‘책임이 있다’(오블리제)라는 프랑스어의 합성어다. 재산 등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도덕적 의미다. 지금 필요한 말이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얼마나 실천했을까. 시작부터 끝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웠던 2020년, 매출 500대 기업 기준 올해 3분기 누적 기부금은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신아일보는 올 한해 업종별 주요 대기업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사항을 점검, 조명해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식품업계는 CJ와 KT&G, SPC, 하이트진로 등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와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공헌사업에 적극 힘을 보탰다. 예년과 달리 대면 지원에 다소 한계가 있는 점을 감안해 온라인을 통한 재능기부 등 비대면 나눔활동으로 온정을 나눈 점이 눈에 띈다. 또, 청각장애인, 저소득 가정과 같은 소외이웃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CJ, 나눔재단 중심 재능기부·온택트 멘토링 집중
CJ(회장 이재현)는 CJ나눔재단을 중심으로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온라인을 활용한 재능기부와 멘토링 등의 사회공헌사업을 중점 진행했다. 특히, 지난 9월과 12월에 잇달아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온택트(Ontact)’ 멘토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9월에 지방 중고생 150여명이 참여한 ‘청소년 온라인 진로 멘토링’은 청소년에게 다양한 진로체험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연구개발(R&D)·콘텐츠·식품·유통 등 다양한 직무를 담당하는 CJ 계열사 임직원 50명이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참여해 그 의미를 더했다. 멘토 직원들은 학생들의 궁금점과 직무에서 필요한 역량 등을 성실히 답변하며 학생들의 꿈을 응원했다.
지난 11월말부터 이달 8일까진 방송·영화·음악·뷰티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마스터 멘토’를 앞세운 온라인 라이브 특강을 했다. 특강에는 청소년과 대학생 봉사단 1200명이 참여했다. CJ나눔재단은 온라인 강연이 자칫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참여 청소년·대학생의 현장 MC 토크쇼, 실시간 Q&A 등 다채롭게 구성해 호응이 컸다.
CJ는 언택트 봉사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앞서 6월 임직원 2000여명은 면마스크·면생리대 등으로 꾸려진 ‘핸즈온(Hands-on) 키트’를 제작하고, NGO(비정부기구)를 통해 전국의 소외계층 아동들에게 전달했다.
성지연 CJ 사회공헌추진단 과장은 “코로나19는 지속되는 형국이라 비대면 방식의 사회공헌 트렌드가 자리 잡을 것”이라며 “힘든 시기지만 따뜻한 나눔은 멈추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CJ나눔재단은 사회공헌사업을 위해 최근 3년간(2017~2019) 연평균 150억원을 투입했으며, 올해 역시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이에 못지않은 비용을 집행했다.
◆KT&G, 글로벌 공헌 활동도 쉼 없이 지속
KT&G(사장 백복인)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방역물품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농가·장애인·저소득가정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일례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올 2월 임직원이 모은 ‘상상펀드’를 활용해 자가격리자와 의료진을 위한 식료품·방역물품 지원을 목적으로 긴급지원금 5억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다. KGC인삼공사와 함께 10억6000만원 상당의 정관장 홍삼도 방역현장에 전달했다.
3월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입학식·졸업식 등 대목을 잃어버린 화훼농가를 돕기 위해 ‘화훼농가 돕기 릴레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특히, 백복인 사장은 창립기념일(4월1일)을 앞두고 직원들에게 꽃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화훼 소비촉진에 앞장섰다.
KT&G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소통에 어려움이 많은 청각장애인을 돕고자, 지난 10월말 ‘사랑의달팽이 투명 마스크 사업’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1억원 상당의 투명 마스크를 청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학교와 병원 등에 지원했다.
최근에는 KT&G복지재단을 통해 수도권 저소득 가구 3400여세대에 6억8000만원 상당의 난방비를 지원했고, 전국 사회취약계층 2만 가구에 10억원 상당의 식자재를 공급했다.
글로벌 사회공헌활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도네시아와 러시아, 터키 등지에 각각 1억원 상당의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후원한데 이어, 러시아와 터키 대학생 46명에게 총 1억원 규모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KT&G 관계자는 “사회공헌 투자액은 2018년 669억원에서 지난해 101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며 “올해에도 진정성을 기반으로, 저소득층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다양한 소외계층을 적극 지원했다”고 밝혔다.
◆SPC, 나눔 철학 바탕 다양한 온정 나눠
SPC(회장 허영인)는 ‘나눔은 기업의 사명’이라는 철학으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면서 상생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방역현장과 소외계층을 중점적으로 지원한 가운데, 장애인과 청년, 결식아동을 위한 여러 나눔활동을 진행했다.
SPC그룹은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3월 한 달간 확진자가 집중된 대구·경북지역에 파리바게뜨, SPC삼립 등 계열 브랜드의 빵을 매일 1만개씩 총 60만개를 전달했다. SPC그룹의 해외파트너사인 미국의 던킨브랜즈도 동참해 생수 30만개를 기탁했다. 특히, 대한적십자사를 대신해 청도대남병원,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등 방역현장에 직접 제품을 전달하기도 했다. 12월에는 의료진 응원 차원에서 삼립호빵 1만2000여개를 전국 적십자병원 6곳에 제공했다.
SPC는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SPC해피쉐어’ 캠페인도 꾸준히 전개 중이다. 해피쉐어 캠페인은 해피포인트 애플리케이션(해피앱)에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게시하고 소비자가 응원댓글을 달면, 일정금액을 적립해 기부하는 프로그램이다. 올 9월까지 4만5000여명의 응원을 받은 덕분에, 복지사각지대 31가정 89명에게 8000여만원을 지원했다.
이 외에도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급여 일부를 모은 ‘행복한 펀드’로 올 9월까지 17억원을 모아 저소득 가정 장애아동의 재활치료에 보탰고,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을 돕기 위한 ‘행복한 장학금’도 활발히 지원했다. 관련 장학금 누적액은 2012년 이래 올해까지 29억여원에 달한다.
SPC 관계자는 “코로나19 의료진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사회를 지원하고자 올 한 해에도 다양한 활동들을 했다”며 “앞으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이트진로, 소외된 곳곳서 나눔 실천
하이트진로(대표이사 사장 김인규)는 ‘진심을 다(多)하다’를 올해 사회공헌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과 함께 청년·소상공인 등 지역사회 구성원을 응원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하이트진로는 소방공무원 지원의 일환으로, 올 10월부터 11월3일까지 4주간 국민안전을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들을 위해 소방서에 찾아가는 ‘감사의 간식차’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는 전국 19개 소방서에 간식차량을 배치해 소방관들에게 간식을 제공한 것으로, 지원 물량은 소방서별 110인분, 총 2090인분에 달한다. 이 외에 소방청과 함께 소방관의 체력 증진을 위한 비대면 체육대회 ‘2020 더 히어로 레이스(2020 tHere’s Race)’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 외에 소방 유가족을 위한 ‘소방관육성장학금’ 등을 올해 17명에게 지원했고, 소방 꿈나무 양성 학교인 한국소방마이스터고에도 기숙사 비품과 연수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저소득 청년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국남동발전, 창원지역자활센터와 함께 ‘청년창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5월 경남 창원에 베이커리 카페 ‘빵그레’ 1호점을 오픈했다. 지원자를 선발해 제빵 기술을 교육하고, 일정기간 동안 직접 카페 운영 경험을 쌓아 후배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하이트진로는 빵그레 공간을 10년간 무상 임대하고, 운영이 안정화되는 6개월간 관리비를 지원했다. 재료 구입과 빵 운반에 필요한 차량도 함께 제공했다.
하이트진로는 또,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착한 임대인 운동’에도 동참했다. 전국에 소유한 건물 17개소에 임대 중인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간 임대료를 전액 면제해줘 눈길을 끌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올해엔 기부금 규모를 올 3분기 기준 전년보다 40%가량 늘리는 등 지역사회 나눔 활동 동참에 적극 나섰다”며 “100년 역사를 가진 주류기업으로서의 역할에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