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보험금 청구 간소화]⑥ 의료계, "편의성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
[갈 길 먼 보험금 청구 간소화]⑥ 의료계, "편의성보다 부작용이 더 클 것"
  • 김보람 기자
  • 승인 2021.12.13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험계약자 편의 빙자한 의료데이터 보험사 축적·활용 우려
보험료 인상·전산화 구축 비용도 소비자 몫…자율 개선 촉구
지난 6월 16일 국회앞에서 열린 5개 의약단체의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 촉구 공동 기자 회견. (사진=대한의사협회)
지난 6월 16일 국회앞에서 열린 5개 의약단체의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 촉구 공동 기자 회견. (사진=대한의사협회)

[편집자주]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특히 우리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금융환경은 '경천동지(驚天動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달라졌다. 스마트폰에서 클릭 몇 번으로 계좌를 만들고, 금융거래를 하고,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는 디지털금융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보험금 청구는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10년 넘게 공전하는 이유와 이를 둘러싼 논란을 살펴 보험 소비자 편의를 향상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 "예를 들어 과거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공임신중단을 경험한 여성이 있다고 합시다. 이 과정에서 병원은 환자에 이런 민감한 진료 사항을 세세하게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여성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 산부인과 진료 등 보험금 청구 중에 인공인신중단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과거 인공임신중단을 빌미로 태아 및 부인과 보험 가입이 거절되거나 보험료가 높게 책정되고, 심지어 보험금도 못 받게 된다면, 이 경우에는 누가 책임지는 겁니까?"

의료계가 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12년째 반대하고 있는 단적인 예다. '간편한 보험금 청구'라는 목적보다 그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현재는 보험사가 보험금 청구를 통해 축적한 의료기록 등 데이터를 보험금 청구 외 다른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도록 법제화돼 있다. 하지만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목적으로 하는 보험업법 개정이 이뤄지면 이 같은 안전장치가 해제돼 민간기업인 보험사가 환자의 민감한 의료 정보를 활용해 보험료를 책정하고 보험금까지 거부하는 등 결국 보험가입자의 불이익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 주장이다.

13일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 등 의약 5개 단체는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보험업법 개정안 폐기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하는 등 반대를 이어가고 있다.

보건의약 5개 단체는 "환자의 진료 정보 즉 개인의료정보를 민간 보험사에 전송하는 것은 단순히 보험금 청구를 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가 개인의료정보를 전산화함으로써 방대하고, 민감한 환자의 진료정보를 손쉽게 축적·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개인의료정보를 축적한 민간보험사가 △보험금 지급거절 △보험가입 및 갱신 거절 △갱신 시 보험료 인상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보험금 청구 전산화에 따른 구축 비용 역시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보험가입자에게 부담으로 전가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갖추고, 의료법에 따라 이를 안전하게 관리·보존하는데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결국 보험가입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EMR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초기비용과 유지·관리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원급 의료기관은 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위해서는 비용과 관련한 제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비용은 보험계약의 당사자이자 청구 간소화로 인해 비용 절감으로 이익을 얻게 되는 민간보험사가 부담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민간보험사의 보험료 인상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가 보험금 청구 전산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또 있다.

민간보험사 집적까지 이뤄진다면 결국 의료민영화의 실마리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민영화란 국가가 지금까지 운영해 온 분야를 민간에게 위탁하는 것을 말한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의료서비스를 장악한다면 과잉 진료 등의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약 5개 단체는 "정부가 진료비 청구 간소화 제도를 추진하는 것이 진정 국민편의를 위해서라면 진료비 청구 간소화보다는 일정금액 이하의 보험금 청구 시 영수증만 제출하도록 하고, 현행 의료법에서 가능한 범위의 민간 전송 서비스를 자율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면서 "더 나아가 실손의료보험의 지급률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 지급률 하한 규정을 법제화하고 보건당국의 실손의료보험 상품의 내용 및 보험료 규제를 현실화하는 것이 더 실효적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형병원은 현재 헬스케어 플랫폼·보험사와의 제휴를 통해 보험금 청구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고객 편의성과 비용 절감 등 보험금 청구 전산화에 따른 이점을 의료계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보험사와 헬스케어 플랫폼사와의 제휴를 통해 보험금 청구 전산화 시스템을 도입했다"면서 "이는 보험금 청구를 위해 다시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의료 서비스 차원으로 또, 각종 증빙 등 종이 서류 및 청구 인력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qhfka7187@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