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혁신·신시장' 인식 변화…1조원대 M&A, 헬스케어 신사업
“생존에만 급급하거나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는 기업에겐 미래도, 존재 의의도 없다. 혁신적으로 변하지 못한 회사는 과감한 포트폴리오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 (2021 상반기 VCM)”
“신규 고객·시장을 창출하는 데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항상 새로운 고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지를 우선순위에 두고 생각해 달라. (2022 상반기 VCM)”
뉴 롯데를 향한 신동빈 회장의 신사업 로드맵이 드러났다.
10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을 그룹 미래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고 1년여간 총 1조원 가량의 다양한 M&A(인수·합병)로 재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창업주이자 신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이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일본에 이어 국내에 롯데 깃발을 꽂은 후 그룹의 근간인 유통과 식품, 관광사업을 키웠다. 1979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인수는 롯데가 화학업으로 다각화하며 지금의 재계 톱(Top)5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후 성장을 거듭했던 롯데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으면서 다소 위상이 위태롭게 됐다. 주력인 오프라인 유통채널이 큰 타격을 받고 경영 대세가 된 디지털 전환에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영향이 큰 탓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롯데그룹의 자산총액은 재계 톱5 기업 중 유일하게 감소했다. 2020년 기준 롯데의 자산총액 합계(계열사 86곳)는 125조6812억원으로 전년의 129조1552억원보다 3조4740억원 줄었다. 5대 그룹인 삼성, 현대자동차, SK, LG가 많게는 10조원 이상 자산을 늘린 것과 대비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신 회장의 경영 리더십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미래 먹거리 발굴과 체질 개선에 소극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실제 신 회장은 코로나19 첫 해인 2020년 하반기 VCM(옛 사장단회의)에서 디지털 전환과 신사업 발굴보다는 유통 등 본업의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그는 당시 “DT(디지털 혁신)를 이루고 새로운 사업이나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해왔던 사업의 경쟁력이 어떠한지 재확인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플랫폼·메타버스·모빌리티 성장성 큰 사업 투자
신 회장은 이듬해와 올해 VCM에서 알 수 있듯이 ‘과감한 혁신’과 ‘신규 시장 창출’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룹도 이에 발맞춰 공격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우선 700억원을 투자해 ‘롯데헬스케어’ 법인 설립을 추진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바이오와 헬스케어를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공식화했다. 2030년까지 국내 헬스케어 시장규모는 지금보다 2배가량 큰 약 450조원 이상 예상되는 만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롯데헬스케어는 과학적 진단·처방 등 건강관리 전 영역에서 종합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표방한다. 롯데는 향후 메디컬 영역 확장과 글로벌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롯데제과 등 그룹 식품 계열사와 협업으로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고, 호텔롯데와 실버타운 사업도 추진한다. 이달 1일 관련 법인설립 등기를 마치고, 초대 대표로 이훈기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을 선임했다.
롯데는 또 최근 1년간 100억원 이상의 M&A 또는 지분 투자 건수만 12건, 총 금액만 1조원이 넘는다. 본업의 경쟁력 제고와 영역 확장, 신사업 발굴이 골자다.
대표적으로 롯데쇼핑이 지난 9월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국내 가구업계 1위 ‘한샘’ 경영권 지분(약 5%·3095억원, 롯데하이마트 포함)을 인수했고, 올 초에는 3134억원에 ‘한국미니스톱’을 인수하며 그룹 계열의 세븐일레븐이 빅(Big)3 편의점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지난달에는 카셰어링 업계 1위 ‘쏘카’에 1800억원을 투자하며 3대 주주에 올랐다.
이 외에 중고나라(중고거래 플랫폼·300억원)와 포티투닷(자율주행 스타트업·250억원), 와디즈(펀딩 플랫폼·800억원), 스탠다드 에너지(배터리 스타트업·650억원) 등 플랫폼과 메타버스, 모빌리티와 같은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도 적극 투자했다.
◇핵심 유통HQ장 비롯데맨 영입…'순혈주의' 깬 결단
신 회장은 그룹 식품사업 핵심인 롯데제과와 롯데푸드 간 합병도 추진했다. 오는 5월 주총 승인을 거쳐 7월에 합병이 완료된다. 양사 매출 규모만으로 국내 식품 상장사들 중 단숨에 톱(Top)2 자리에 오르게 된다. 합병되면 분유부터 실버푸드까지 전 연령, 전 생애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메가 종합식품기업’으로서 국내 식품업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이번 합병은 신 회장이 식품사업에서 ‘1등 롯데’로 도약하기 위한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신 회장의 광폭 투자는 향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기준 롯데의 현금성 자산만 1조4000여억원에 이른다. 2년 전보다 2배가량 늘었다.
신 회장은 이와 함께 핵심인 유통사업 HQ장에 비(非)롯데맨인 김상현 부회장을 앉혔고, 이(e)커머스와 백화점사업부 대표 모두 외부 수혈했다. 최근엔 LG생활건강 출신 이우경 부사장에게 유통 마케팅 총괄 자리를 맡기는 등 순혈주의를 깨고 조직 혁신에 칼을 빼들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 스타일 면에서 보수적인 색채가 강했던 롯데가 최근 들어 상당히 공격적으로 변화하는 게 흥미롭다”며 “각 사업 총괄과 계열사 대표들이 신 회장의 기대에 부응해 올해 어떤 식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롯데 혁신의 속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아일보] 박성은·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