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확충 둘러싸고 금융권 '개념 전쟁' 치열
자본확충 둘러싸고 금융권 '개념 전쟁' 치열
  • 임혜현 기자
  • 승인 2022.06.1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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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주자본비율, 가용자본 인정 등 개념에 주목도 새삼 높아져
흥행 가능성만 주목돼 우려...건전성 이슈에 투자자 셈법 복잡

금융업체들과 당국의 자본건전성 확충 전쟁이 치열하다. 미국이 긴축 본격화를 선언한 여파 자체도 크지만, 이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겹치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건전성 대책을 세울 필요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10일(현지시간) 미 경제언론 CNBC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인플레이션 제어를 포기하고 긴축에 매달려도 정책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헤지펀드 전문가 데이비드 아인혼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정부부채는 현재 30조달러(3경7900조원)에 달한다"면서 인플레이션 제어는 물론, 긴축을 통한 경기 활성화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딜링룸의 긴장된 모습. 최근 금리 인상과 긴축 시동이 각국 중앙은행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모두가 통제 불능에 빠지는 글로벌 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이에 따라 자본건전성 확충에 각 금융업체들이 나서고 있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당국의 콘트롤 타워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딜링룸의 긴장된 모습. 최근 금리 인상과 긴축 시동이 각국 중앙은행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모두가 통제 불능에 빠지는 글로벌 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이에 따라 자본건전성 확충에 각 금융업체들이 나서고 있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당국의 콘트롤 타워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 재정적자를 감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너무 높은 수준으로 올리면 정부의 이자부담이 급증하게 된다는 게 아인혼의 우려다. 그는 "이 때문에 연준의 통화긴축 정책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침체와 고물가가 겹칠 수 있는 때에 자본 확충 필요가 높다.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영구채), 후순위채 등을 활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자본성증권 발행에는 향후 이자비용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그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가릴 때가 아니라는 태세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금융계에서 최근 신종자본증권을 연이어 발행하며 자본 확충에 나서는 업체들이 눈에 띈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발행 시 자본비율이 좋아진다. 인수합병 실탄 마련 등에 요긴한 방법이다.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후순위채보다도 후순위, 즉 속칭 후후순위채라서 발행금리가 높은 편이다. 이익 가능성은 크나 위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금융사들이 신종자본증권 발행시 수요예측을 했다가 수요가 몰려 증액하는 등 인기를 얻는다는 건, 그만큼 안정성을 갖춘 업체가 높은 이자 상품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뜻도 된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최근 2700억원 규모의 5년 콜옵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 위한 수요예측에서 8370억원의 주문을 확보했다. 모집물량의 3배가 몰려 4000억원으로 증액발행을 확정했다. 이 자금은 기타기본자본 확충, 그룹 BIS비율 제고 효과와 기채무상환, 운영자금 등에 적절히 활용될 것으로 알려진다.

올 하반기에도 은행계를 중심으로 신종자본증권 발행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금명간 신종자본증권 추가 발행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은행계로 한정해 보면, 자본을 확충할 필요가 당장은 급하지 않다. 8일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자료에 보면, 3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이 작년 말과 같은 12.99%로 집계됐다.

다만 금감원도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하고 있어 예상치 못한 손실이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은행의 핵심 손실흡수능력을 나타내는 보통주자본비율 중심으로 감독을 강화함으로써 은행의 자본충실도를 높일 방침"이라고 방법론을 강조해 관심을 모은다.

따라서 이들 은행권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러시는 선제적 노력 내지 실탄 비축으로 의미의 방점을 더 찍으면 될 일이다.

조금 다른 예지만, 단순히 이자를 높게 준다든지 대마불사 논리로 대기업이라는 간판만으로는 투자자들이 반색하지 않는 상황도 낯설지 않다.

한화생명의 경우 근래 후순위채 수요예측에서 모집액을 채우지 못했다. 한화생명이 8일 진행한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후순위사채(신용등급 AA0) 수요예측에서 총 2930억원의 기관투자가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한화생명은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5000억원까지 증액할 복안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건전성 확충을 위해서 시장의 도움을 노크하는 것이지만, 다름아닌 자본관리 부담 능력의 우려를 이유로 후순위채 모집이 뜻대로 안 된다는 점은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그만큼 신중하게 현재와 미래 상황을 셈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도 사정을 예의주시 중이다. 이런 가운데  당국이 9일 보험계의 RBC(지급여력비율) 고통을 덜어주고자, LAT 잉여액의 40%를 매도가능채권 평가 손실 한도 내에서 가용자본에 가산할 수 있도록 선언한 점도 관심을 모은다. 

RBC 비율은 고객이 일시에 보험금 지급 요청을 했을 때 보험사가 이를 지급할 수 있는지 나타낸다. 당연히 현실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경우(마치 은행권의 뱅크런과 같은 사례)지만, 건전성 관리상 요긴한 지표다. 문제는 올해 들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보험사의 RBC 고민이 커졌다는 데 있다. 보험권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RBC 비율이 당국 권고안 아래로 떨어지는 예가 속출한 것.

LAT는 내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에 대비해 시가평가 보험부채가 원가평가 부채보다 클 경우 차액만큼을 추가 적립하도록 한 제도다.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평가익이 감소하면서 부채 감소 효과로 이어져 LAT 잉여금이 발생한다. 이중 40%를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의 판단이 재미있다. 보험업계는 40~60% 인정을 요구했다는 후문인데, 40%만 인정해 주기로 선을 그은 것. 이를 두고 길들이기설 등 여러 추측이 나오지만, 금리하락기에 보험부채 증가분인 LAT 추가적립액의 40%가 가용자본에서 차감되는 점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유력하다.

불필요한 온정은 베풀지 않고 최소한의 배려만 한다는 속내로 읽혀 주목되는 부분이다.

또 당국은 매도가능채권 평가손실 한도 내에서만 가용자본으로 인정하는 선도 그었다. 보험사들이 장기 보험부채와의 매칭 목적으로 운용하는 매도가능채권 평가손실이 최근 RBC비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문제와 우려도 적지 않다. 당국이 현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최소한의 대처에만 매진한다는 우려다. 예를 들어, LAT 잉여액의 40%를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게 되면 요구자본이 100% 올라가게 되나, 금리가 3% 후반대까지 상승하면 RBC가 또 다시 턱 밑에 들어찰 수 있다.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면서 대응책을 주시하고, 오히려 일부 은행권처럼 과잉 추진이 우려되는 경우 열을 일부 식힐 수 있도록 지도하는 묘수를 추가해 달라는 주문이 높아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이익 추구에만 매몰돼 전례없는 위기에서 눈 먼 투자를 하지 않도록 유의를 계속 당부할 필요도 높다.    

dogo84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