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타협 아닌 강경 대응만 일색… 정치권에서도 우려 목소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화물연대) 총파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정치권에서 노동 문제 관련해 많은 의견이 쏟아진다. 이 문제를 바라보는 여야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며 온도 차를 빚고 있다.
◇정부·여당 "민노총 왕처럼 모시던 시절 아냐"
강경 대응… 민노총 "겁박·협박" 강 대 강 대치
화물연대 총파업은 2일 9일째로 접어들었다. 정부·여당은 이들에 대해 강경 대응 의지를 내비쳐 좀처럼 타협점을 찾기 어려운 모양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중대본 회의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유소의 재고 문제도 운송거부 사태가 계속되면 머지않아 전국적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는 정유, 철강, 컨테이너 등 물류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는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피해가 크게 확산하면 업무개시명령을 즉시 발동할 것"이라고 시사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29일 시멘트 분야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2004년 관련법 제정 이후 실제 적용된 건 이번이 첫 사례다.
여당도 화물연대를 향해 "노동조합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성실한 노동자를 위협하고 있다"고 정부 방향성에 무게를 실었다.
양금희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이후 시멘트 출하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구호로 외친 '물류를 멈추자'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들자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노동조합이 근로자를 상대로 협박을 해댄다"며 이같이 꼬집었다.
양 수석대변인은 "민노총의 이런 구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민노총 눈치 보기 급급한 지난 정부는 단호한 대응 한 번이 없었다"면서 "과거 민노총을 왕처럼 모시던 시절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음을 국민도 알고, 비노조원들도 알고 있지만 자신들만 여전히 모르고 있다"고 비꼬았다.
이어 "화물연대의 협박과 강요로부터 성실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라며 대립각을 세웠다.
정부·여당의 강경 대응에 화물연대도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정부가 현재 화물연대 파업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6월달에 이미 정부와 합의된 사항인데 이걸 지키지 않아서 5개월이 넘도록 손 놓고 있다 이제와서 노동 혐오 발언들을 쏟아내고, 헌법에 위배되는 업무개시명령까지 발동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법을 집행하는 데 무슨 협상이 필요하며, 무슨 교섭이 필요하겠느냐'고 발언한 데 대해선 "현재 화물연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무부처 장관이 그런 인식을 하고 있단 건 대화하겠단 게 아니고 노동자 문제에 대해 겁박하고 협박하겠단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거세게 지탄했다.
◇野 "정부·여당, 노조와 전면전하겠단 건가"
심상정, '업무개시명령 저지' 개정안 발의해
야당은 정부·여당을 향해 대화와 타협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제1차 확대간부회의에서 "정부가 강경일변 대응으로 화물연대 파업을 파국으로 몰고 있다.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에 이어서 안전임금제 완전 폐지까지 언급하며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대화와 중재의 노력을 촉구한다. 오직 힘으로 화물연대를 무릎 꿇리겠단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황명선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정부가 정말 원하는 게 뭔가. 물류대란을 막는 게 목적인가, 아니면 강경 정부의 모습을 보여 지지율을 높이는 건가"라며 "이 엄중한 경제 위기에 노조와 전면전이라도 하겠단 건가"라고 반문했다.
황 대변인은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정쟁화하려는 시도를 즉시 멈추기 바란다. 지금은 분열과 갈등이 아닌 소통과 상생으로 위기 극복의 총의를 모아야 할 때"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강성 이미지만 고집할 게 아니라, 위기 극복의 비전과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게 화물연대 파업을 풀어낼 진정성 있는 대통령의 자세"라고 질타했다.
정의당 대표단과 의원단은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지난달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를 규탄했다.
이정미 대표는 "이 정부 들어서고 모든 게 거꾸로 가고 있다. 그러나 절대 후퇴하거나 거꾸로 가서는 안 되는 일이 일하는 사람, 모든 시민의 생명안전을 지키는 일"이라면서 "정당한 외침에 협박과 강제로 일관하는 정권에게 단호히 경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은주 원내대표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마치 준비된 계획을 그대로 실행하는 군사작전이 연상될 정도"라고 평가하며 "화물노동자의 파업을 해결하고 물류대란을 정상화할 길은 대화밖에 없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이 아니라 교섭재개명령을 발동해 밤을 새워서라도 합의안을 도출하라"고 촉구했다.
업무개시명령 관련, 이를 저지하는 제도적 움직임도 포착됐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전날 업무개시명령과 그에 따른 허가와 자격 취소 규정, 벌칙 규정 등을 삭제하는 내용을 포함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심 의원은 " 업무개시명령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모호한 발동 요건으로 헌법이 정하고 있는 노동 3권, 집회 및 결사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이런 한계로 2004년 도입 이후 18년 동안 한 번도 발동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뿌리 깊은 노조혐오를 부추기며 사문화된 업무개시명령을 꺼내 들고는, 출구마저 봉쇄한 채 마치 노동자들을 박멸할 기세로 서슬 퍼런 폭언을 쏟아내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왜곡된 노동 인식을 규탄하고 정부의 태도 전환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민주당에게도 업무개시명령 폐지해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최대 쟁점 '안전운임제' 두고도 의견 달라
政 "문제 많아" vs 野 단독소위로 법제화 시동
화물연대 총파업의 쟁점은 안전운임제다. 2020년 도입된 안전운임제는화물운송 종사자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해 과로·과적·과속을 방지한단 취지로 화물차주와 운수 사업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보장하는 내용의 제도다. 현재 적용대상 범위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이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대상 확대를 요구한다. 나아가 이를 법제화해야 한단 주장을 편다.
앞서 정부·여당은 당정협의체를 통해 안전운임제를 3년 연장하겠다고 표명했지만, 적용대상 확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화물연대 측과 이견을 빚으며 총파업이 불거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안전운임제 폐지'마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비서관은 지난달 30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으로 답변을 갈음한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앞서 나온 '다양한 옵션'에 안전운임제 폐지나 화물 등록제 폐지가 검토되느냐는 질문에 "현재 결론이 난 건 없다. 그렇지만 검토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선 정부가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다양한 옵션을 검토하고 있단 말을 드렸다"며 "안전운임제가 정말 안전을 보장해주는 건지 이 부분에 대한 검토를 위해서 아마 전면적으로 전수조사, 운송사업자에 대해서도 실태조사를 해보겠단 취지로 안다"고 설명했다.
즉, 전수조사나 실태조사를 실시한 뒤 안전운임제가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고 여겨질 경우 폐지도 검토 중이란 것으로 해석된다.
고용노동정책과 이와 관련된 경제·사회정책 관련,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입장차를 좁혀가기 위해 설립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김문수 위원장은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안전운임제라는 자체가 문제가 많은 제도다. 이게 문제가 많기 때문에 계속 여기에서 논란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안전운임제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걸 어떻게 고치면 노사 또는 운송노사 간에, 화주와 차주 사이에 문제가 많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논의를 계속해야 될 걸로 본다"며 "지금 이걸 그대로 가져가면 계속 갈등이 증폭되고 해결이 안 된다"고 바라봤다.
또 "세계적으로 이런 제도가 없지 않나. 이 희한한 제도를 도입해서 계속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걸 해결하지 않은 책임이 정부에도 있지만 이런 부분을 화물운송사업을 하는 차주들과 운송사업자들, 국토부, 노동부, 전 국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안전운임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의당 김희서 대변인은 이에 대해 "경사노위가 윤석열 정권의 홍위병을 자처하고 나섰다. 노정 간 중심을 잡고 중재해야 할 김 위원장과 자문단이 정부의 반노동 기조를 두둔하고, 화물연대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했다"며 김 위원장에 대한 경질과 자문단 해체를 강력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경사노위가 할 일은 정부, 기업, 노동자 간의 사회적 대화를 관리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라면서 "그런 경사노위가 제 할 일은 하지 않고 정권의 나팔수가 됐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과의 대화에 일말의 의지가 있다면, 또한 경사노위를 태극기부대 전초기지로 만들 게 아니라면 지금 즉시 김 위원장을 경질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며 "정부는 경사노위를 바로잡고 그 본연의 역할인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쏘아붙였다.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차주에 대한 적정 운임을 보장해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운임제를 파업을 이유로 폐지할 수 있다니 황당무계하다"면서 "정부가 어떻게 제도의 존폐를 협박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느냐"고 거세게 비난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당 위원들은 이날 단독으로 법안소위를 열어 안전운임제를 논의해 법제화에 시동을 걸었다. 회의에는 화물연대 측도 함께했다.
여당 간사인 김정재 의원은 야당의 단독 개의에 반발, 회의장에서 "민주당이 의회에서 하는 거라곤 폭거뿐"이라며 "민주당이 민주노총의 하청 집단이냐. 민주노총이 국민 경제를 볼모로 파업을 하는데 거기에 협조하려고 민주당이 회의를 연단 건 말이 안 된다"고 질타했다.
국민의힘 소속 국토위원들은 소통관 기자회견에서 "예산안 단독 날치기한 지 열흘 만에 다시 열린 나홀로 소위는 의회폭거"라면서 "민주노총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를 옹호하며, 그들의 심복이 돼 청부입법까지 벌이는 민주당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몰아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