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용사회에 산다. 신용은 금융거래의 근간이다. 다만 신용은 '꼭 갚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용을 통한 모든 금융거래에는 제약이 따르게 된다. 그만큼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문제로 떠오른다. 이들에겐 파산만이 답은 아니다. 이들에게도 패자부활전은 있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역할과 기능만 잘 살펴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편집자 주>
"IMF를 조기 졸업했다지만 여전히 IMF가 진행형인 그들에게도 패자부활전은 필요합니다. 출발선이 같을 수 없는 게임이라면 그 정도 룰은 있어야 공정한 게임 아니겠습니까."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 진도준이 2002년 카드대란 당시 순양카드 채권단 협의회에서 '개인워크아웃' 제도 도입을 조건으로 순양카드와 대영카드의 인수를 결정하며 했던 대사다.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운영하는 개인워크아웃은 정상적인 채무상환이 불가능해진 채무자에게 채무상환액을 감면해 주거나 상환 일정을 조정해 주는 '채무조정제도'다.
채무조정제도는 채무자의 미래를 담보로 상환능력을 회복할 기회를 주는 게 골자며, 파산보다는 회생에 목적을 두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월드컵 열풍과 함께 이른바 '카드대란'이 일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에 따른 내수 진작을 위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폐지하고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신용카드 사용을 독려했다.
규제 개선에 힘입은 카드사들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며 신용이 검증되지 않은 소비자에게도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했다.
30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1998년 4202만장이었던 신용카드 수는 2002년 무려 1억481만장으로 급증했다. 당시 경제활동인구(2298만2000명) 1인당 4~6장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던 셈이다.
더욱이 소비자들은 경기침체와 고용 악화에 따른 소득 감소를 대출 진입 장벽이 낮은 현금서비스, 장기카드대출(카드론)로 보충했다. 이때 '카드 돌려막기'란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2002년 신용카드 결제금액은 268조원, 카드 대출 규모는 412조8000억원으로 약 1.5배에 달한다.
결국 금융 채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들이 쏟아졌다.
이는 사기와 절도 등 경제 관련 범죄 확대, 이혼율 증가, 동반자살 등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됐다.
신복위는 이러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2002년 10월1일 본격 출범했다.
금융사들의 자체적인 신용회복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었지만 과중채무자의 채무변제를 지원하거나 회생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은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개인파산제도라는 공적채무자 구제제도가 있었지만 당시 파산법은 회생보다는 파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금융채무불이행자나 과중채무자의 재건을 도모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신복위 출범 첫해는 5개 이상 기관에서 2000만원 이하, 1년 이상 금융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신청자가 대상이었다.
현재는 연체일에 따라 △연체 0~30일 '신속채무조정(연체전 채무조정)' △연체 31~89일 '프리워크아웃(이자율 채무조정)' 등을 통해 상환연장과 채무상환 유예, 이자율 인하를 지원한다.
연체 90일 이상 개인워크아웃 제도를 통해서는 상환기간 연장은 물론 이자채권 전액 감면, 원금 감면 등을 제공한다.
신복위는 채무조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소액 대출은 물론 취업을 지원하고, 개인 신용관리의식 제고를 위해 신용교육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개인회생·개인파산 지원, 서민금융 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과 서민금융 지원체계 개편 및 법적 근거 마련 등 채무 문제 해결부터 경제적 자립까지 뒷받침하는 채무종합 상담 기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