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유통업계에서는 롯데 신동빈 회장이 하반기 VCM(옛 사장단 회의)을 갖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영환경에서 ‘새로운 기회 발굴, 과감한 실행’을 사장단에게 주문했다. 과거 영광에 안주하지 말고 그룹의 미래를 그릴 성장동력을 조속히 찾으라는 ‘채찍질’로 풀이된다.
올해도 원윳값 인상 폭을 두고 협상이 지지부진하다가 27일 극적 타결했다. 인상 폭을 88원으로 결정하면서 원윳값은 ℓ당 1000원을 웃돌게 됐다. 고물가 장기화 속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이 작년에 이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호텔롯데·우아한형제들·한샘과 같은 업계 선도기업 수장들이 잇달아 자리에 물러났고, 경영 사정이 좋지 않은 LG생활건강은 더페이스샵 등 가맹사업 종료를 발표했다.
◇신동빈 회장 "새로운 혁신 추구해야"
롯데 하반기 VCM…사업 관점·시각 변화 주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달 18일 진행된 ‘2023 하반기 VCM’에서 새로운 혁신 추구를 거듭 강조했다. VCM은 신 회장은 물론 각 계열사 대표와 임원 등이 함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이번 VCM에서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증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기조, 디지털 변혁 등 기업 경영 환경 변화를 촉진하는 외부 요인을 점검하고 지속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신 회장은 이날 CEO들에게 경영 키워드 ‘Unlearning Innovation’과 함께 △미래형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비전과 전략에 부합하는 투자 △선제적 리스크 관리 등 3가지 경영방침을 제시했다.
신 회장은 “환경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며 “유연한 생각으로 현재의 환경에 부합하는 우리만의 차별적 성공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사업의 관점과 시각을 바꾸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과감한 실행으로 이어지게 노력해야 한다”며 “고성장·고수익 사업과 ESG에 부합하는 사업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로 전환하고 미래 신성장동력을 준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한 “해외 사업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동남아 등 신성장 시장과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지금이 우리에게 미래를 준비하고 재도약을 위한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걸 명심해 달라”고 주문했다.
◇원윳값 협상 타결…'흰우유 3000원' 시대 오나
인상 폭 ℓ당 88원…밀크플레이션 확산 우려
올해 원윳값 인상을 두고 낙농가와 유업계 간 줄다리기가 이어지다가 27일 합의에 성공했다. 유업계, 낙농가 등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 소위원회는 이날 용도별 원유기본가격 인상안을 최종 합의했다. 우유 재료가 되는 원유(原乳)는 지난해 기준 리터(ℓ)당 996원이다. 올해 인상 범위는 69~104원으로 유업계는 시장상황을 고려해 최소 금액을, 낙농가는 늘어나는 생산비용 때문에 최대 인상 폭을 기대했다. 지난달 9일부터 원유기본가격 인상이 논의됐으나 양측 이견 차가 커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이날 열린 11차 회의에서 원윳값 인상 폭을 88원으로 결정하면서 최종적으로 ℓ당 1084원으로 책정됐다. 원유가격이 ℓ당 처음으로 1000원을 웃돌게 된 것이다.
정부는 올해 원윳값 인상을 기정사실화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앞서 25일 공식 입장을 통해 “국내 원유가격은 작년 생산비가 올해 반영되는 상황”이라며 “농가가 1년 이상 감내한 사실을 고려하면 일정 수준의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생산비용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사룟값’ 등의 부담이 주 원인이다. 젖소 먹이인 조사료(풀사료), 농후사료(곡물사료)는 수입에 의존한다. 여기에 우크라 전쟁 장기화,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작년 생산비는 전년보다 13.7% 상승했다. 원유기본가격은 통상적으로 2013년 이후 매년 8월1일 생산분부터 적용했다. 작년에는 11월이 돼서야 합의안이 나왔다. 올해의 경우 물가부담 완화 차원에서 인상 시기를 두 달 연기한 10월1일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원윳값이 인상되면 흰우유(백색시유)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현재 서울우유·매일유업·남양유업 등 국내 유업계 빅(Big)3의 흰우유 제품(900㎖~1ℓ) 소비자가격은 마트 기준 평균 2800원대다. 작년에는 원윳값 인상에 따라 흰우유 제품이 평균 10% 인상된 것을 감안하면 이르면 올 하반기 중에 ‘흰우유 3000원 시대’가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유제품은 물론 빵, 커피 등 우유 사용이 많은 연관 제품 가격까지 잇달아 오르는 ‘밀크플레이션’도 점쳐진다. 농식품부는 다수의 제품이 수입 멸균유를 사용해 밀크플레이션 확산까지는 아닐 것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지난해 흰우유 가격 인상 이후 주요 아이스크림과 빵, 과자 등의 가격은 줄인상 된 바 있다.
◇호텔롯데·우아한형제들·한샘 수장 '나가거나 바뀌거나'
'건강상 문제·새로운 도전·최대주주 선택' 이유 제각각
호텔롯데와 우아한형제들, 한샘을 이끌던 수장들의 신변에 변화가 생겼다.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 새로운 도전, 최대주주의 선택 등으로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회사를 떠났다. 우선 이완신 롯데그룹 호텔군HQ 총괄대표 겸 롯데호텔 대표이사 사장이 건강상의 문제로 이달 12일 사임했다. 롯데그룹이 호텔롯데 창립 50주년을 앞둔 지난해 12월 글로벌 호텔 체인으로 사업변화와 혁신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이 대표를 선임했지만 반년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롯데그룹은 이달 20일 롯데호텔 신임대표로 ‘롯데호텔맨’인 김태홍 리조트·CL 본부장을 새 대표로 선임했다. 다만 호텔군HQ 총괄대표는 여전히 공석이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올해 2월 대표직에 이어 의장직에서도 내려오며 창업 13년 만에 야인이 됐다. 김 의장은 이달 7일 전 임직원들에게 “열정은 너무 뜨겁고 너무 큰 힘을 쓰는 일인지라 좋은 쉼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제 인생의 큰 쉼표를 찍는다”며 “고문이라는 역할로 여러분과 연결돼 뜨거운 도전에 지속적으로 힘을 더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메일을 보냈다. 김 의장은 디자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아한형제들은 올해 신규 선임된 이국환 대표가 이끈다.
한샘의 최대주주인 IMM프라이빗에쿼티(PE)는 위기극복을 위해 대표변경 카드를 꺼냈다. IMM PE는 이달 13일 이사회에서 신임대표로 김유진 IMM오퍼레이션즈본부 본부장을 대표집행임원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로써 IMM PE에 인수된 후 약 1년 반 한샘을 진두지휘하던 김진태 대표는 이달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게 됐다. 이런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김유진 대표 체제 후 한샘에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LG생활건강, 가맹사업 접고 '멀티숍' 변신
물품공급 계약 전환, 취급 제한 해제
LG생활건강이 더페이스샵과 네이처컬렉션의 가맹사업을 접는다. 대신 물품공급 사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이는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이 온라인과 H&B(헬스앤뷰티) 스토어 중심의 ‘멀티숍’으로 변화한 데 따른다. LG생활건강은 그동안 운영해온 ‘단일 브랜드숍(로드숍)’ 방식으로는 경쟁력 확보·제고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LG생활건강은 최근 전국 더페이스샵·네이처컬렉션 가맹 경영주에게 ‘가맹 계약’을 ‘물품공급 계약’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물품공급 계약은 경영주들이 자유롭게 타사 브랜드 및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현재의 취급 제한을 없앤 거래 형태다.
LG생활건강은 물품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경영주를 대상으로 △인테리어 개선 비용 지원 △9개월간 임대료 50% 등 조기 정착 지원 △기납부 가맹비 전액 환급 △장기 미판매 색조 화장품 재고 반품 △간판 교체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LG생활건강은 계약 구조를 변경해도 기존과 동일하게 자사 제품을 공급하고 할인행사 비용 지원 등 유익한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또 사업 철수를 희망하는 경영주에게는 △재고 반품 △3개월분의 임대료 지원 △기납부 가맹비 전액 환급 △보상금 지급 △인테리어 잔존가액 보상 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