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금산분리는 한국은 물론 세계 주요 국가에서도 원칙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기술 발전 등으로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과거의 규제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새다. "금융산업의 BTS가 나올 수 있도록 금융권 규제를 혁신하겠다"는 한국은 과연 어디에 있나. 금산분리 규제 완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확산하고 있으나, 여전히 옛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아일보는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의 K 금융 현주소를 살펴보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바를 모색한다.
가상자산업계는 금산분리 규제 여파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여타 금융산업과 다르게 가상자산업계는 아직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오히려 관련 업계에서는 가상자산에 대한 법제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올 상반기 말 기준 28조4000억원으로 작년 말(19조4000억원)과 비교해 46% 증가했다. 이렇다 보니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정치권과 정부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물론 시행령까지 속도감있게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9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싱가포르 등 해외에서는 관련 시장에 알맞은 규제와 시스템 마련에 분주하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3년 전부터 관련 논의를 시작해 디지털자산 규제 법안인 ‘MiCA(미카)’를 최근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오는 2024년 6월부터 시행된다. 미카는 가상자산을 △전자화폐토큰 △자산준거토큰 △유틸리티토큰 등 사용처 별로 구분한 것이 특징으로, △가상자산 발행 및 거래에 관한 투명성 △가상자산 공시 의무 △내부자거래 규제 △발행인 자격요건 규제 △인증 및 관리·감독 등이 골자다.
싱가포르에서는 가상자산 업체들의 자체 자산과 이용자 자산을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또 일본 역시 지난해 5월 루나·테라 사태 이후 스테이블코인 법안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 국가들이 가상자산 관련 법제화, 시스템 마련 등에 분주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글로벌 주요 금융 선진국과 비교하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그나마 올해 상반기 말 국회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것이 성과다. 해당 법안은 1단계 법안으로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행위 규제가 골자다. 시행은 내년 7월로 예정됐다.
또 가상자산 발행과 유통을 비롯해 자금조달 사업자에 대한 규제, 가상자산 사업 육성 등을 골자로 한 2단계 법안 마련을 위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다만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지난달 이뤄진 국정감사, 내년 4월 예정된 국회의원 총선거 등을 이유로 법안 통과가 조속히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2단계 법안의 조속한 통과는 물론 관련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재진 DAXA 상임부회장은 “국내에서 디지털자산 시장을 규율하는 첫 번째 입법이 이뤄진 것은 환영할 일”이라며 “향후 국제 기준에 발맞춰 업계 전반에 대한 폭넓은 내용이 담길 2단계 법안도 국회에서 속히 논의해 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한진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가상자산 산업이 없어질 산업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내년 7월까지 시행령을 단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며 “최종적으로 디지털자산 기본법이 제정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디지털 자산 전체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정부와 정치권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