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이은 고금리, 고물가 장기화에 빚으로 버티던 서민들의 경제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최대 100만원 한도 소액생계비대출 이용자 7명 중 1명은 월 1만원도 안되는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해 연체자 낙인이 찍혔다. 담보 등 상대적으로 신용이 낮은 서민들은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위기에 놓였다. 어느 때보다 서민을 위한 금융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 주>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을 바라보는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좋은 아파트에 살기 위해, 투자를 위해 자금을 융통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취약계층 등 서민들은 당장의 생활비, 갑작스러운 병원비 등 경제적 압박으로 일상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금융지원은 살아낼 힘이다."
대출자 15만7000여명, 대출 규모 915억원 등 긴급 소액생계비대출(최대 100만원)의 씁쓸한 흥행을 두고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 원장 겸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코로나19에 이어 고물가, 고금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정책서민금융이 절실히 필요한 취약계층은 많지만 정작 서민을 위한 금융사들은 부동산 담보 위주 대출 등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우리나라 서민들은 필요한 자금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나도 어려운데, 내가 낸 세금으로 어려운 사람 도와야 하나', '갚을 능력도 없는데 무슨 대출을 받아' 등 취약계층 금융지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도 깔려있는 실정이다.
오랜 기간 금융전문가로서 정책서민금융을 연구하고 정책제언을 이어오던 이재연 원장이 서금원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 있다.
이 원장은 "서민금융 발전을 위해 임기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며 "그간의 연구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서민금융 문제점을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었지만 정부 정책에 맞춰 서금원 조직을 이끌고 서민금융 당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걱정도 있었다"며 임명 당시 소회를 밝혔다.
이어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는 정책서민금융 대상으로 하는 서민 규모가 큰 반면 공급 여건은 생각보다 좋지 않다"며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단기간 정책서민금융 수요가 급격히 확대된 데다, 100% 보증 대출인 정책서민금융상품이라도 금융사 입장에서는 높은 관리 비용 등으로 인해 취급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정책서민금융 상품 대출금리는 고정된 상태에서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사 조달 금리가 인상됨에 따라 취급을 회피하는 문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금원을 통한 정책서민금융 공급은 △2019년 3조7000억원 △2020년 4조9000억원 △2021년 5조3000억원 △2022년 7조3000억원, △지난해 7조2000원 등으로 급격히 확대됐다.
이에 이 원장은 3년 임기에 서민금융시장 전체를 개선하기는 어렵다고 판단, '서민 특화 신용평가모델' 등 민간 서민금융사들이 서민금융을 제공하는데 필요한 인프라부터 구축했다.
이 원장은 "서민 특화 신용평가모델은 사회초년생, 주부 등 신파일러(금융 이력 부족) 등의 금융정보 외 서금원 상환 의지 지수 등 비금융 대안 정보를 반영해 상환능력을 보다 정교하게 분석, 서민금융을 폭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며 "모든 정책상품에 적용 목표와 함께 정책서민금융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축적시켜 더욱 고도화해 민간 금융사에 제공, 취약계층 금융 이용 기회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실질적인 금융지원 외 취약계층 신용 회복과 취업·복지지원, 자산 형성 등 복합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원장은 "정책서민금융 이용자들은 대부분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부동산이 부족하거나 재무 정보가 부족해 신용평점이 낮은 상태로 금융지원만 해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며 "어려운 경제 여건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융교육, 자산 형성 등을 지원해 금융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취업 및 복지 지원을 통해 자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상환하기 어려운 과다채무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에게는 금융지원보다 채무조정을 통해 신용 회복을 우선 지원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 원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금융 취약계층을 보다 밀접하게 관리해 주는 맞춤형 서민금융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실상 추심 의무가 없는 정책금융기관 한계를 개선해 취약계층 상환 능력 제고를 통해 궁극적인 재기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 원장은 "현재 서금원은 제한된 재원과 인원으로 보다 많은 서민들에게 정책서민금융을 공급하기 위해 보증 방식을 이용하고 있는데 비금융 서비스 제공 등에 따라 관리가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고 짚었다.
이어 "정책서민금융 이용자 중 부실 위험이 높은 사람, 취약한 사람들에게는 직접 대출을 제공해 좀 더 밀접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상환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추가적인 대출 이용보다 복지 지원을 제공하거나, 상환 능력이 있다면 신용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컨설팅을 제공하고, 연체 증후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현 경영 상황을 판단해 어려움을 체크하는 방법 등이 있다. 채무자 입장에서는 재기 기회를 계속 이어갈 수 있고 금융사는 잠재 리스크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금원에서 받은 소액생계비대출 연체율 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소액생계비대출 연체율은 15.5%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이하 연체율은 21.1%로 평균을 웃돌았다.
신용점수 하위 20%, 연 소득 3500만원 이하 성인에게 연 15.9% 금리로 5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까지 대출해 주는 소액생계비대출 평균 대출액은 54만원, 매월 평균 이자는 약 7155원 수준이다.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은 20대 5명 중 1명은 한 달에 7000원 수준인 이자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일각에서는 서민을 위한 금융지원이라곤 하지만 고금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이 원장은 "한정된 재원으로 수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며 "서금원의 타깃팅은 저축은행에서 대출받지 못해 대부업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인데, 금리를 낮추면 저축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사람도 서금원을 찾게 돼 정착 꼭 필요한 취약계층 자금 규모가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서민 특화 신용평가모델과 집중된 타킷팅을 통해 지난해 서민·취약계층 자금 애로 완화를 위해 정책금융기관에서 지원한 정책서민금융 지원 규모는 10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이 원장은 "직원들이 목표가 정해지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척 열심히 노력한다는 점이 서금원의 진면목"이라며 "코로나 팬데믹 등 정책서민금융 공급 목표가 급증했지만 직원들이 합심해 연간 정책서민금융 공급 목표를 지속적으로 달성해 왔다"며 공로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이재연 원장은 "일용직으로 일하며 노숙하고 건강도 악화되는 등 어려운 상황에 처해계신 고객이 있었는데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아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살아갈 용기를 줘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읽으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정책서민금융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상황"이라며 "서금원 등 정책서민금융사만으로는 서민들의 금융 수요를 충분히 충족할 수 없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금융사들이 정체성을 살려 좀 더 적극적으로 서민금융을 제공해 줄 필요가 있다"며 "서민금융사들이 상당 부분 역할을 해준다면 서금원도 다른 금융 선진국에서와 같이 좀 더 취약한 서민들에게 역량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