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오징어 게임' 이후 K-드라마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대세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에는 다양한 캐릭터의 남주(남자 주인공)와 여주(여자 주인공)가 드라마의 성공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남주의 경우 오직 여주만 바라보는 이른바 '백마 탄 왕자'에서 MZ세대 느낌의 새로운 캐릭터로 변모하고 있고, 여주는 더이상 남주에 의존하지 않는 모습에서 나아가 이제는 '걸크러시'를 뽐내며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선사하고 있다. <편집자주>
◇ 오직 여주만 바라보는 '백마 탄 왕자'
‘백마 탄 왕자’ 남주와 ‘캔디 여주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드라마 속 고정불변의 법칙이었다. 돈 많고 잘 생긴, 모든 것이 완벽한 ‘백마 탄 왕자’는 시대를 초월해 등장했다. 다만 많은 남주들의 배경과 능력은 변했어도 한 가지 법칙은 그대로다. 어떤 상황에서든 오직 여주만 바라본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왜 ‘백마 탄 왕자’에 열광할까? 전문가들은 “남자주인공의 초감각적인 부분들이 여성들의 보호받고자 하는 심리나 욕망과 연결돼 극적인 재미를 살리는 요소가 된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시청률 5.4%로 출발해 마지막 회 무려 2배를 뛰어넘은 12.9%(닐슨코리아 제공·전국 기준)로 막을 내린 MBC 드라마 ‘연인’은 남주 이장현 역을 맡은 남궁민 배우의 ‘백마 탄 왕자’ 캐릭터가 성공을 이끌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첫눈에 반한 여주를 향한 장난 섞인 구애로 시작해서 물불 가리지 않고 그녀를 구해내는 용기, 그리고 세상이 등을 돌릴지라도 끝까지 그녀의 아픔을 안아주는 순애보는 ‘백마 탄 왕자’의 모습 자체였다.
남궁민은 ‘연인’에서의 열연으로 '2023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제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도 TV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차지했다.
최근 종영된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남주 류선재 역을 연기한 변우석 배우도 ‘백마 탄 왕자’로 부족함이 없다.
첫사랑인 여주를 위해 “너 구하고 죽는거면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남주의 순애보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절절하게 했다.
‘선재 업고 튀어’ 역시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 결과에서 1위를 차지했고, 남녀 주인공 역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 MZ형 남주, '알잘딱깔센'으로 매력 터지다
K-드라마의 클리셰가 오로지 여주만 바라보는 남주의 순애보같은 사랑이야기라면 요즘 MZ세대의 남주는 그 캐릭터가 확실히 달라졌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만큼 편리함과 간편함을 선호하고, 개인의 취향과 사생활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기에 드라마에서조차 가감없이 그러한 성향이 드러난다.
특히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있게'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알잘딱깔센'한 남주의 행동들이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속 백현우는 뜻밖의 상황에서 ‘뿜뿜’하는 센스와 감수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유연함을 드러냈다. 특히 남성성을 너무 강조하지 않은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장착된 문제해결 능력과 든든함은 새로운 MZ형 남주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남주 캐릭터가 사랑받으면서 '눈물의 여왕'은 최고 27.3%의 시청률을 찍으며 tvN 역대 드라마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서비스 플릭스패트롤을 살펴보면 '눈물의 여왕' 주간 순위가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하며 K-드라마의 돌풍을 이어갔다.
'은근히 센스있네'라는 말이 나오는 MZ형 남주는 또 있다.
JTBC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여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강희식은 지덕체를 겸비한 경찰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주가 그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어느새 곁에 있다. 혼자서 감당하기 벅차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 친구처럼, 혹은 연인처럼 티격태격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나온다.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고 ‘스며든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게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MZ형 남주 캐릭터가 K-드라마를 하드캐리 하는 이유다.
◇ 수동적인 여주는 NO… 기세 좋은 여자들의 등장
지난 3월 한 회사에서 소셜 빅데이터를 활용해 여성의 트렌드 변화를 연구한 ‘2030 여성 트렌드 리포트’를 살펴보면, 2030 여성들이 선호했던 TV 인기 드라마 캐릭터가 과거에는 '상속자들'의 차은상 같은 로맨스 주인공에서 최근에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같은 주체적인 캐릭터로 바뀌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주인공 우영우 변호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지만 단점을 장점으로 극복해 내며 보통의 변호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때때로 이상한 행동이나 말투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들 때도 있지만 우영우의 진심과 열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도 큰 사랑을 받았다. 방영 당시 드라마 TV 화제성 부문에서 7주 연속 1위(굿데이터코퍼레이션·6월 5주차~8월 2주차)라는 기염을 토했고,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TV 비영어 부문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넷플릭스 비(非) 오리지널 드라마임에도 글로벌 톱10 21주라는 최장기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시청률 역시 자체 최고인 전국 17.5%, 수도권 19.2%(닐슨코리아·유료가구 기준)로 종영했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도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닥터 차정숙’은 차정숙이라는 여성 의사 이야기를 담았다. 가족들에게 헌신하며 완벽한 가정을 일궈냈다 자부했던 차정숙이 ‘엄마’가 아닌 ‘나’로 살면서 벌어지는 일상이 담겨있다.
시청률과 화제성은 ‘닥터 차정숙’도 만만치 않다. 첫 회 시청률 4.9%에서 최고 시청률 18.5%까지 기록하며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닥터 차정숙은 종편 시청률 1위. 역대 JTBC 드라마 시청률 5위를 기록하며 국내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동시에 글로벌 OTT에서도 연일 화제였다.
◇ 역대급 시원함으로… 안방극장 휘어잡는 ‘걸크러시’
한국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억압된 상황에서도 착한 모습으로 묵묵하게 견디는 캐릭터가 많았다. 최근에는 이러한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고통’ 받은 만큼 속 시원하게 되갚아주는 걸크러시 캐릭터가 인기다.
tvN ‘내 남편과 결혼해 줘’는 남편과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주인공 강지원(박민영)의 복수극을 담았다.
첫회 시청률 5.2%로 출발했지만 최종회에서는 12%를 기록했다. 특히 평일 드라마 타깃 시청률이 최고 6%대를 기록한 것은 이례적인 케이스다.
뜨거운 관심 속에 막을 내린 ‘내 남편과 결혼해 줘’는 전 회차를 통틀어 시청률 9.2%를 기록하며 역대 tvN 월화드라마 평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특히 ‘내 남편과 결혼해 줘’는 종영 후에도 시청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5월 1주차(4월29일부터 5월5일까지)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글로벌 TV쇼 주간 순위에서 영어와 비영어 콘텐츠를 통틀어 5위를 기록하며 방송이 시작된 1월 1주부터 한 주도 빠지지 않고 18주 연속 글로벌 TOP10을 지키고 있다.
MBC '밤에 피는 꽃'을 이끄는 주인공 조여화(이하늬)도 ‘걸크러시’ 매력을 뿜어내는 캐릭터다. 낮에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15년 차 수절 과부로, 밤이 되면 담벼락을 넘나들며 의로운 일을 펼치는 ‘검은 복면 히어로’ 조여화 역을 맡았다.
조여화는 죽을 때 죽더라도 할 일은 해야 온전한 삶이라고 믿는 캐릭터다. 복면으로 신분을 가린 채 창포검을 들고 밤바람을 가르며 백성을 구하는 영웅으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특히 아픔 많은 과부의 모습과 정의감 넘치는 히어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짠한 감동과 통쾌한 사이다를 동시에 안겼다.
'밤에 피는 꽃'은 첫 회 시청률 7.9%로 출발해 최종화에서 시청률 18.4%를 기록했다. 12부작임에도 MBC 금토 드라마 역대 1위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17부작이었던 ‘옷소매 붉은 끝동’의 시청률을 깬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신아일보] 최문정·정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