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후판가 협상을 뒤늦게 마친 조선사와 철강사들이 곧장 하반기 협상 줄다리기에 돌입해 팽팽히 맞섰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올해 하반기 후판가 협상에 돌입했다. 철강업계는 더 이상 가격을 내릴 순 없다는 입장이다. 건설경기 부진 등으로 실적 악화의 늪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업계는 중국산 저가 후판 유입과 철광석 값 하락 등 가격 인하 요인이 많다고 맞서고 있다.
후판은 두께가 6밀리미터(㎜) 이상인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에 쓰이는 주재료 중 하나다. 조선용 후판은 철강사 후판 매출의 절반 이상, 전체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조선사 입장에서도 후판 가격은 선박 건조 비용의 20~30%를 차지한다.
철강업계는 산업 보호를 이유로 국산 후판의 가격 방어를 주장했다. 전반적으로 업황이 부진한 가운데 제품 판매 가격마저 하락하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다는 입장이다.
앞서 상반기 후판 가격은 톤(t)당 90만원 초반대로 내려갔다. 후판가 인하에는 철광석 등 원자재 시세 하락과 중국 철강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8월30일 기준 철광석 t당 시세는 101.18달러(약 13만5400원)로 지난 1월초(142.58달러)보다 약 30% 하락했다.
통상 제조업에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원가가 절감돼 수익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철강업계의 경우 철광석 값이 떨어지면 이를 철강제품 가격에 반영해야 해 오히려 실적 악화로 이어진다.
중국 철강 업체들의 저가 공세도 문제다. 중국은 자국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자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철강재를 대량으로 수출하고 있다. 중국산 후판은 t당 70만원대로 국산보다 약 20만원 저렴하다. 이러한 중국산 저가 물량 탓에 제대로 된 경쟁을 하기 어려운 지경이라는 게 국내 철강업체들의 호소다.
반면 조선업계는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판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는 조선업 특성상 후판가를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이제 겨우 흑자 전환을 한 상황에서 후판 가격이 다시 오르게 된다면 원가 부담이 커져 조선업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국내 조선사들은 최근 중국산 후판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월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에서 덤핑이 일어나고 있어 우리도 중국산의 비중을 20%에서 25% 이상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수입 후판 물량은 지속 증가세다. 지난해에는 227만1000t으로 2년 만에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 기준 119만2000t이 수입됐다. 반면 국내산 후판 소비량은 올해 상반기 241만5000t으로 연간 기준 500만t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후판 매출 비중이 약 15%에 달하는 현대제철은 이 때문에 최근 중국산 후판을 반덤핑 혐의로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소했다. 그러나 국내 주요 철강 업체가 제소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중국과 복잡한 이해 관계로 얽혀 있어 다양한 변수와 득실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사가 진행되더라도 반덤핑 관세가 실제 부과되기까지는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