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잇따른 금융사고 발목…“내부통제 책임 회피 어려워”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시중은행 최고경영자(CEO) 임기가 연말 일제히 만료를 앞둔 가운데, 인선을 위한 경영 승계 레이스가 본격 개막했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는 물론 대규모 상생금융 지원,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에도 역대급 실적을 올리며 연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배임, 횡령 등 금융사고에 따른 내부통제 실패로 확률은 엇갈리고 있다. 은행장 연임 및 교체에 따라 증권사와 보험사, 카드사 등 비은행 계열사 CEO 인사가 이뤄지는 만큼 금융권 인사 태풍이 몰아칠 전망이다. <편집자주>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연말 임기 종료를 앞둔 시중은행장 가운데 연임 기상도가 가장 흐리다. 올해 연달아 발생한 대규모 금융사고에 내부통제 실패 책임을 피할 수 없는 탓이다.
금융당국마저 해당 사고들을 주시하며 날 선 비판을 가한 만큼 연임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지주는 지난달 27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소집하고 자회사 CEO들에 대한 승계절차를 진행 중이다.
조병규 행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해 오는 12월 첫 임기가 종료된다. 조 행장은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 후 금융권 첫 ‘공개 오디션’ 형식 인사 프로그램을 도입해 선임된 은행장이다. 이전까지 이사회 내부 논의만으로 CEO 후보를 결정해 오던 관행을 탈피하기 위한 시도였다.
조 행장은 취임 시기가 다소 늦은 만큼 비교적 짧은 임기를 부여받았지만,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목표로 내걸고 은행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우리은행 기업대출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 161조원에서 지난해 말 170조원, 올해 상반기 말 183조원을 기록하며 꾸준히 불어났다.
조 행장은 올해 초에는 시중은행 중 ‘당기순이익 1등’이라는 추가 목표를 제시하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올 상반기 우리은행 당기순이익은 1조67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7% 증가했다. 지주 설립 이후 최대 반기 실적 기록이다. 순이익 증가율은 신한은행 다음으로 높았다. 특히 2분기 순이익은 884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5% 급증했다.
승승장구하던 조 행장 행보는 2분기 말께부터 제동이 걸렸다. 우리은행에서 연달아 금융사고가 터지면서다.
우선 올해 6월 180억원 규모 횡령 사고가 발생했다. 영업점 대리급 직원이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을 빼돌렸다가 덜미를 잡혔다.
조 행장은 횡령사고가 발생하자 준법감시인을 전격 체하고 해당 사고와 관련된 전·현직 결재라인, 소관 영업본부장 등에게 강력한 인사상 책임을 물었다. 조 행장은 직원들에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올바른 마음가짐과 책임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사고 여파가 가시기도 전인 8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정황이 드러나며 조 행장과 우리은행 내부통제 신뢰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2020년 4월3일부터 올해 1월16일까지 손 전 회장 친인척이 확실하거나, 친인척이 실제 자금사용자로 의심되는 차주에게 총 42건, 616억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이 가운데 350억원(28건)이 대출 심사와 사후관리 과정에서 통상 기준이나 절차를 따르지 않고 부적정하게 취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은 조 행장이 부당대출을 사전에 인지했음에도 조치와 보고를 미뤘다고 보고 있다. 그런 만큼 조 행장은 내부통제 실패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해당 사건으로 현 경영진 사퇴 여론까지 나오는 가운데, 임기가 아직 1년 넘게 남은 임종룡 회장보다는 조 행장 연임 불가 가능성이 더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당대출이 조 행장 재임 시기에도 이뤄졌다는 점에서 책임 회피가 힘든 데다, 금융당국에서도 고강도 검사를 예고한 상황에서 책임을 져야 할 CEO를 재선임 하기에는 은행 측 부담이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신아일보] 문룡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