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아니라 ‘방패막이’ 악용 늘어
불법 금품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국회-의회의원들이 잇달아 뭉칫돈 출처에 대해 출판기념회 축하금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볼썽스럽다.
사실 출판기념회를 핑계로 돈을 거둬들이는 작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수십년 전부터 이런 식의 후한무치한 자금 모으기가 일반화되어 있다. 과거엔 국회의원들이 주를 이뤘으나 지금은 지방의회 의원들도 툭하면 출판기념회다.
출판기념회는 수준 이하의 시집을 내놓거나 자서전, 아니면 대필한 정치평론집 등 종류도 많으며 자신이 지닌 권력에 따라 오가는 돈과 나타나는 사람의 격도 다르다.
이들은 봉투에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씩 넣어 축하금이라고 전달한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 보험용이다. 현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수천 명이 참석해 국회 인근 교통 정체 현상까지 생겼다.
불법성 정치자금의 창구로 전락한 출판기념회로 300명의 의원들이 매년 거둬들이는 돈은 줄잡아 수백억 원에 달할 것이라는게 국회 입방아꾼들의 이야기다.
지난 19대 총선을 앞둔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18대 국회의원들 50% 정도가 출판기념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저께 재건축 사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명수 전 서울시의회 의장이 출판기념회 후원금 명목이었을 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중형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법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해운업계 비리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등도 뭉칫돈에 대해 출판기념회 책값과 축하금이라고 둘러대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출판기념회의 책값과 축하금은 출처가 불분명해 돈의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 출판기념회를 연다고 해서 또 돈을 많이 가져다 바쳤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다. 은근슬쩍 검은 돈을 섞어 놓으면 캐내기 힘들다.
불법 자금을 섞는 칵테일용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출판기념회는 말 그대로 자신의 책을 낸 것에 대해 자축하는 것이다. 과거 출판기념회에서는 저자가 직접 다과를 제공하고 책을 선사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거기에 돈을 가져가 내밀면 오히려 욕을 먹었다. 그런데 이렇게 전도된 데에는 돈 모으기 수단으로 생각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판비를 충당해 보자는 출판사의 역할이 컸다.
출판기념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따갑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지난 2월 정가 판매, 수입과 지출 선관위 신고 등을 담은 ‘출판기념회 규제 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백년하청이다 6개월 째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표류 중인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이런 법안이 있는지도 모른다.
출판기념회에서 돈을 받을 경우 책을 판 값만 받아야 맞다. 여기에 뭉칫돈이 끼어들면 뇌물이다. 뇌물이 아닌 척하지만 대놓고 받는 뇌물인 것이다. 이는 정치자금법 위반이고 탈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용 의원은 ‘여의도 관행’이라고 항변하고 있으며 새정연 법제사법위원들은 “정치자금법 규제 대상도 아닌 출판기념회를 빌미로 벌이는 수사는 명백한 표적·별건 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바른 것을 구분하고 가려내지 못하는 의원들이라면 ‘의원사표’를 내는 것이 도리다.
주장환 순회특파원 jangwhana@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