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규 칼럼] ‘홍석현 대망론’과 호남
[조한규 칼럼] ‘홍석현 대망론’과 호남
  • 신아일보
  • 승인 2016.05.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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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일보·JTBC회장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홍석현 대망론’ 보도가 두 차례 나가자 ‘인물은 인물인데 사실이냐’, ‘손석희와 결합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닐 것 같다’, ‘참신한 포인트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정치세력이 없는데 가능하겠느냐’, ‘정주영 회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지역기반이 없는데...’ 등등의 회의적인 반응도 나왔다. ‘중앙일보는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과 중도적 지식인 그룹들은 대부분 ‘공감한다’는 반응이었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삼성을 거론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어느 당으로 갈 것 같으냐’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홍 회장이 대선에 나가려면 정당을 선택해야 한다. 신당을 창당할 것인지, 기존 새누리당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가운데 어느 당에 입당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정당 선택은 민심,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연히 민심이 받쳐주고 있는 정당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어느 지역을 기반으로 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당들은 최근 다소 완화됐지만 지역주의 투표로 인해 지역정당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가령 새누리당은 영남,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충청은 더민주와 국민의당보다 새누리당에 가깝다. 따라서 지역 선택은 정당 선택이기도 하다. 아울러 확실한 지역기반을 가져야 세(勢)를 형성할 수 있고, 세를 가져야 흔들리지 않는 대권주자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

누구도 지역기반 없이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정치학자들이 관련 논문에서 밝힌 분석이다.

1987년 이른바 ‘87년체제’가 출범한 뒤 제13대 대선이후 ‘지역’은 유권자의 투표행태와 지역정당의 패권적 위치를 결정짓는 주요한 변수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박찬욱 서울대 교수는 “민주화이후 전국 규모로 실시된 선거에서 표심의 향방을 예측 또는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고려된 것은 지역요인”이라고 주장한다.

이갑윤 서강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인의 투표행태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투표결정 요인으로 출신 지역의 영향력이 여전히 크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지역투표의 영향력이 별로 감소하지 않고 강하게 지속되고 있는 현상은 지역민과 정당 간에 선거연합이 형성돼 결빙됨으로써 지역 정당제와 지역투표가 서로를 강화시키며 존속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는 “지역주의에 대한 고려 없이 한국의 선거를 설명하기는 극히 어렵다”고 했고,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지역주의 투표가 단순히 전통적인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의 결과이며, 목적지향적인 행위”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렇다면 홍 회장의 지역은 어디인가. 그의 지역은 ‘서울’이다. 1949년 10월 2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비롯해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현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살고 있다. 전형적인 서울 토박이다. 게다가 선친 홍진기(洪璡基, 전 중앙일보 회장)는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났다. 홍 회장의 8대 조 이전부터 왕십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고 한다.

홍진기의 선친 홍성우(洪性佑)는 왕십리에서 정미소를 운영했으며, 지금의 한양대 일대의 땅을 소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홍진기가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에 입학하던 해 홍성우는 금광개발에 실패해 정미소마저 남의 손에 넘겼다.

왕십리 일대의 땅과 가평의 임야도 날아갔다. 그래서 모친 이문익(李文益)은 왕십리에서 경성제대 예과가 있는 청량리로 이사해 생활의 방편으로 하숙을 쳤다.

당시 경성제대 예과를 다닌 홍진기가 하숙생을 직접 선발했는데, 문홍주 전 문교부장관황산덕 전 법무부장관계창업 전 대법관김봉관 전 농림부차관선우종원 전 국회사무총장 등 경성제대 수재들이었다.

해방이후 서울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없다.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황해)윤보선(충남)박정희(경북)최규하(강원)전두환(경남)노태우(경북)김영삼(경남)김대중(전남)노무현(경남)이명박(경북) 등 전직 대통령들과 박근혜 대통령(대구) 등 모두가 서울 출신이 아니었다. ‘향세경점(鄕勢京漸 : 시골 세력이 서울을 지배)’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서울 출신들은 서울에서 큰 소리를 치지 못했다. 서울시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구청장, 시·구의원 중에서 순수 서울토박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가.

홍 회장은 서울을 지역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차별, 특정지역 패권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지역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이란 지역기반 만으로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다.

전국 각지의 출향민(出鄕民)들이 서울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홍 회장은 영남, 호남, 충청 중에서 어느 지역을 선택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홍 회장의 가계(家系), 특히 모계(母系)는 호남에 가깝다. 홍 회장의 모친 고(故)김윤남(金允楠 : 신타원 김혜성, 원불교 원정사)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광주에서 초등학교중학교에 이어 호남 제일의 명문여고인 광주욱(旭)공립고등여학교(별칭 ‘웃고녀’, 현 전남여고)를 졸업했다. 오빠 김홍준(金弘準)은 광주서중(현 광주일고)을 다녔다.

김윤남의 선친인 김신석(金信錫, 전 호남은행 행장)도 경남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출신이지만, 생애 중요한 시절을 대부분 목포와 광주에서 보냈다.

일제강점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부인 현준호(玄俊鎬)는 호남은행을 설립한 뒤, 부산상고를 졸업해 조선은행에 근무하고 있던 김신석을 전격 목포지점장에 발탁했다.

그는 당시 금융계에서 회계의 달인으로 꼽힌 인물이었다. 목포 지점장을 거쳐 전무로 승진한 그는 호남은행의 회계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 결과 무려 50일간의 총독부의 고의적인 특별감사에도 불구하고 호남은행은 회계 상 전혀 꼬투리를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호남은행의 전무행장으로 재직하며 현준호의 동지이자 최측근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김신석이 목포지점장 시절 낳은 딸이 바로 김윤남이다. 1943년 12월 17일 김 윤남은 이화여전 시절 전주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한 홍진기와 결혼해 홍라희 리움관장, 홍 회장, 홍석조 BGF리테일회장, 홍석준 보광창업투자회장, 홍석규 보광회장, 홍라영 리움총괄부관장 등을 낳았다.

특히 홍라희 관장의 이름을 ‘전라도에서 얻은 기쁨’이라는 뜻의 ‘라희(羅喜)’라고 지은 것을 보면 홍진기의 호남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홍진기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여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했던 시기를 전주에서 살던 때라고 회상했다(‘이 사람아, 공부해’ 96쪽).

김윤남도 전주 시절에 대해 “전주는 맛의 고장이고 인심도 좋았다. 동네 나가면 ‘판사 아씨 온다’고 했는데 동네 유지들이 여러 차례 초대를 하고 음식을 대접했다”고 회고했다(‘이 사람아, 공부해’ 94쪽).

홍 회장의 또 다른 호남 기반은 원불교다. 전남 영광 출신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대종사가 창시한 원불교는 전북 익산에 중앙총부가 있다. 원광대학교도 전북 익산에 있다.

원불교는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한 종교인 셈이다.

1962년 홍진기가 구속돼 있을 때 김윤남은 친정 올케의 권유로 원불교 종로 교당을 찾았다. 원불교에 다니면서 남편 홍진기의 석방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했다.

매일 306자로 된 원불교의 ‘심불 일원상 내역급 서원문’을 백번 독송하며 기도를 했다고 한다.

김윤남은 그 기도 덕분으로 남편이 죽지 않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홍진기를 비롯해 홍라희홍석현 등 전 가족이 원불교 신자가 됐다고 한다(‘이 사람아, 공부해’ 286-287쪽 참조).

김윤남은 평생 서원문 백독(百讀)과 참선 수행, 독실한 신심(信心)으로 원불교에서 수행의 두 번째 높은 계위(階位)인 출가위에 오른 원정사(圓正師)다.

그런 만큼 사후(死後)에도 원불교 신도들로부터 상당한 예우를 받고 있다. 따라서 원불교가 평소 정치에 개입하지 않지만, 원정사의 아들 홍 회장이 대권에 도전할 경우 원불교 520개 교당의 1백만 신도들은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을 터.

현재 중앙일보 구독율과 JTBC 시청률이 호남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도 원불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아울러 홍 회장이 호남을 기반으로 할 수 있는 분야는 대북정책이다. 호남 사람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해야 관심을 갖는다.

무턱대고 대북강경정책을 펴면 호남 민심을 얻을 수 없다. 4.13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 참패한 것도 김종인 대표의 ‘북한궤멸론’과 무관하지 않다.

국민의당 호남후보들이 총선기간 내내 ‘김종인 대표의 북한궤멸론은 햇볕정책과 결별을 선언한 것’이라고 맹공을 폈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2015년 12월 14일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통일로 가는 길 : 매력국가’라는 주제의 특강을 통해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을 자임하고 (그 역할을) 늘려나가야 한다”며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남북관계 관련 정책으로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나마 열려 있는 것이 개성공단인데, 현재는 원래 계획의 1/3 수준인 것을 계획대로 확장해 활성화해 나가고, 중국의 일대일로와 우리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잘 활용해서 북한 철도 문제와 러시아 가스관 연결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남북한 경제번영에 기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잣대는 대북정책이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홍 회장이 보수적인 안보관통일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처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노선을 같이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홍 회장은 결국 호남과 서울을 기반으로 한 정당을 선택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물론 홍 회장 자신은 전혀 지역색이 없다. 중앙일보는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능력과 품성 위주 인사’를 한다는 정평이 나 있다.

홍 회장의 모계가 호남과 가깝다고 해서 호남인재를 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홍 회장이 호남·서울만의 지원으로는 대권에서 승리하기 어렵다. 영남·호남·충청·강원·수도권을 모두 아우르는 ‘대(大)지역연합’을 기초로 한 선거연합을 추진해야 가능하다.

현행 대통령제의 승자독식 성격에서 탈피해 권력독점이 아닌 권력공유의 2원집정부제적 국가운영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보수와 진보가 참여하는 ‘정책연대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지역균열세대갈등노사문제를 조정·해결할 수 있는 ‘국민통합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진정한 호남포용정책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