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사실상 새누리당의 차기 대권후보를 수락하는 모양새다.
반 총장은 제주도 롯데호텔에서 지난 25일 열린 관훈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대권 도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반 총장은 선진7개국(G7) 정상회담 참석 차 일본에 들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6일 간의 국내 일정이 잡혀 있다. 각종 포럼과 협회 행사, 하회마을 방문 등 서울과 제주, 일산, 안동, 경주를 돌 예정이다. 여권 중진인사들이 대거 반 총장을 수행(?)할 예정이다.
제주포럼에도 정진석 원내대표를 포함해 여당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서 벌써부터 반기문 띄우기에 발 벗고 나선 분위기다.
이에 화답하듯이 반 총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제가 대통령을 한다고 예전에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자생적으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제가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고 노력한 데 대한 평가라는 생각에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남북 분단도 큰 문제인데 내부에서 여러 가지 분열된 모습을 보여주고, 해외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창피하게 느낄 때가 많다며 “국가 통합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솔선수범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정치권을 향한 쓴 소리도 내놨다.
‘국가 통합’을 차기 대통령의 최대 덕목으로 제시한 셈이다.
반기문 총장이 이번 방한을 통해 대권 의지를 밝힌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본다. 대권후보 지지율 1,2위를 보이고 있는 그가 지금까지 ‘불출마 의사’를 강력히 천명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현직 유엔사무총장이란 직함으로 인한 제약이 있었겠지만, 국민들이 대권후보 1위로 지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에 대한 예의의 차원에서 이번 방한에서와 같이 “내년 1월1일이면 한국 사람이 된다.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 때 가서 고민해 결심하겠다”고 진즉에 피력하는 것이 바람직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엔사무총장 이임을 7개월 남긴 현 시점에서 ‘대권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국민들이 이번 반 총장의 발언에 대해 다소 실망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이유는 이미 반 총장이 여당의 대권후보를 수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포함해 여당 중진의원들이 대거 제주도로 몰려가서 반 총장을 영접했고, 이 중 안홍준 의원은 “대선에 당연히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친박 중진인 홍문종 의원은 “대선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며 여당 대선후보를 기정사실화했기 때문이다.
만약 반 총장이 이 같은 분위기대로 이미 새누리당의 대권후보로 내락됐다면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심판한 국민대다수는 반 총장의 대선출마에 대해 차차 부정적인 의견을 보일 것이며,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반 총장의 대권지지율은 반 토막으로 떨어질 것이고 3~4위까지 추락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반 총장은 그가 밝힌 대로 내년 1월에나 한국 사람이 된다.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어떠한 정치적인 행위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반기문 총장이 안고 있는 최대의 취약점이라고 보여 진다.
그리고 만약 대선 지지율이 3~4위로 떨어진다면 친박은 절대로 반 총장을 대권후보로 거론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반 총장은 국내 대권후보로서 내공이 전혀 없다. 지지율의 등락에만 전적으로 의존했던 민낯이 드러나고 말 것이다.
청년실업문제나 양극화문제, 자살률 세계1위 문제, 출산율 세계 최저 문제 등 태산같이 산적한 국내의 난제들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을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유엔을 위해 10년간이나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명한 대한민국 국민은 4·13 총선 때처럼 이 같은 사실을 최소한 대선 전에 알아차릴 것이다.
반기문 총장은 약소국가의 대통령보다 명예로운 유엔사무총장을 훌륭히(?) 수행한 후 진흙탕으로 끌려 들어오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 아닌지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해청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