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서면서 ‘신용카드 제국’(로버트 D. 매닝)이라는 책자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나라도 ‘신용카드 없이는 집 밖으로 나가지 못 하는 세상’이 돼 버렸고 그에 따라 대출한도와 이자율 책정의 기준이 되는 개인신용정보에 대해 소비자들의 관심도 많이 높아졌다.
모 신용평가회사가 개인신용정보 관리 상품을 출시하고 방송광고까지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용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가 많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신용등급이 무형의 개인자산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됐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굳이 전문가의 조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신용정보의 생명력은 정확성이라는 것은 ‘한번 쯤 빚을 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실시간 정확성을 생명력으로 하는 신용정보를 이상하게 취급하고 있는 금융기관이 있다. 신용카드 회사들이다.
카드사들은 카드론 대출정보를 카드회사들끼리만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으며 신용정보 집중기관에는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5영업일까지 늦게 통보하고 있다.
카드회사들끼리만 정보카르텔을 맺고 있는 셈이다.
이는 카르텔에 참여하지 못하는 타 금융기관들이 역선택의 늪에 빠져 부실위험이 높아질 수 있는 한 요인이 된다.
예컨대 홍길동씨가 A카드회사에서 카드론 대출을 받고 다음 날 B저축은행에 대출신청을 하면 카드론 대출정보를 알 수 없는 B저축은행은 대출을 실행하게 된다.
대출을 많이 받은 홍길동씨가 연체에 빠지게 되면 B저축은행에 부실이 전가되는 셈이다.
이는 카드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또한 카드회사들은 카드론 대출 실행시 소비자의 신용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회하지 않고 있다.
카드회사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카드회원의 신용평가를 해서 대출한도와 이자율을 책정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책정된 한도와 이자율은 다음 책정일까지 유지되고 있으며 다음 책정일이 되기 전에 소비자 신용등급의 변동이 생겨도 초기 책정된 한도와 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다.
다만 소비자가 타 금융기관에 연체를 발생시켰을 경우에는 신용평가회사로부터 매일 오전에 연체정보를 받아 업무에 반영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신용도가 책정된 후 다음 책정일 이내에 저축은행이나 대부업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신용평점이 급격히 하락한 소비자라도 연체기록만 없으면 책정된 이자율과 한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다.
신용정보라는 것이 급격히 좋아질 수는 없어도 급격히 나빠지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름한 뒷골목의 영세 대부업체들까지도 대출 실행시에는 반드시 신용정보를 실시간으로 조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실시간 신용정보의 미조회는 카드사의 부실위험을 높이게 되고 카드사들은 이러한 부실위험을 원가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고금리로 비난받는 카드론 이자율의 한 가지 원인이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힐 일은 소비자의 민원 때문에 실시간 조회를 하지 않는다는 카드사 관계자의 전언이다.
대출받으면 대출정보만 공유하면 될 일이지 왜 조회정보까지 기록으로 남기느냐는 소비자의 민원이 있어서 실시간 조회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금융기관들의 민원을 대하는 귀차니즘(?)이 금융의 핵심인 스크리닝(선별)마저 망각하게 만드는 사례이다.
“금융의 핵심은 스크리닝(선별)과 모니터링(감시)”이라는 어느 경제학자의 표현에 비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카드회사들이 금융의 기본마저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