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일은 상소에서 주자(朱子)를 인용하면서 ‘사리(事理)에는 하나의 옳음과 그름이 있다’며 ‘지금 조정안에서는 옳음과 그름을 감히 분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재상(宰相)들은 임금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옳음과 그름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정에 모아 놓고 있다고 지적하며 무릇 일은 옳은 것은 잃지 말고서 지켜가야 하고 그른 것은 서슴지 말고 버려야 하는 법이니, 이는 위로도 곧고 아래로도 곧은 도리다.
따라서 검은 것과 흰 것을 구분하지도 않고 옳음과 그름을 분별하지도 않으면서 동인협공(同寅協恭)하려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개 천하의 환난(患難)은 옳은 사람인 줄 알면서도 쓰지 못하고 그른 사람인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는 법이다.
진실로 혹 처리를 잘하지 못해 옳은 것을 그르게 여기거나 그른 것을 옳게 여기거나 한 것에 있어서는 비록 기왕에 잘못한 것을 면할 수는 없더라도 뒤에는 방침을 바꾸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만약 옳음과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해 놓고서 단지 한 가지 인정에 구애돼 감히 거역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찌 주자(朱子)가 말한 ‘크게 어지러워짐을 가져오게 될 길’이라 하겠느냐고 질타하면서 어찌 간해도 시행해 주지 않고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데 구태여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사직을 청했다.
이에 숙종은 “경의 간곡한 충간으로 이제야 과인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앞으로 더욱 익숙하게 헤아려 보아 공평하고 성실하게 대사헌 직분을 다하라”고 격려했다.
당파를 일거에 교체 하는 등 가장 강력한 권력자 숙종 앞에서도 당당하게 대사헌의 직을 내놓겠다며 직언하는 이헌일 같은 충신이 있어서 숙종은 46년간 무리 없이 왕권을 유지했다.
이헌일의 충언 상소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을 수수방관해 대통령을 탄핵까지 몰고 온 청와대 민정수석 등 측근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최순실 사건은 대통령 측근들이 자신의 안위와 영달을 위해 최씨가 그른 사람인 줄 알면서도 잘못됨을 지적하는 간언을 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일찍이 공자는 권력자에게 충고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고 하면서도 신하로서 임금에게 바른 말을 한다는 것은 신하로서의 당연한 도리요 의무라고 말했다.
물론 공자가 말한 충간의 의무는 현행 법률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복종의 의무 중에 부당한 명령 또는 법에 저촉되는 명령에 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고만 정해져 있어 문제다.
더욱이 우리 공직사회에서 소신껏 직간했을 때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상급자가 흔치 않다는 것도 문제다.
따라서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아래로는 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도자는 반듯한 공무수행을 위해서 간언을 들을 수 있는 공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윗사람의 눈치나 살피고 비위를 맞추며 아부만 하는 알량한 공직자는 하루빨리 색출해 퇴출시켜야 한다.
/김기룡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