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 승진 3·4세, 경영승계 본격화…책임경영 통한 위기 극복
올해 주요 그룹의 임원인사가 세대교체로 압축된 가운데 30~40대 오너 3·4세가 경영일선에 등장했다. 이들은 미래 먹거리 등 신사업 중책을 맡는다.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자 단기 실적보다는 중장기 성장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으로는 책임경영 측면에서 전문경영인보다는 오너 일가가 전면에 나서는 게 더욱 무게감이 있기 때문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SK 최윤정·롯데 신유열·한화 김동선·GS 허서홍·삼양 김건호는 ‘2024년 임원인사’에서 승진했거나 요직에 배치됐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팀장을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선임했다. 최윤정 본부장은 1989년생으로 그룹 최연소 임원이 됐다.
최 본부장은 사업개발과 전략투자를 총괄한다. 대표적으로 올해 프로테오반트 인수로 확보한 표적단백질분해(TPD) 기술 시장, 그룹이 투자한 미국 원자력 기업 테라파워와 방사성의약품 치료제(RPT) 협력을 통한 미국·아시아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한다. 또 그룹 내 바이오 사업과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분야에서 시너지도 창출한다. 최 본부장은 이를 통해 SK바이오팜의 ‘2026년 19조원의 기업가치를 지닌 글로벌 톱 수준 빅 바이오텍 도약’을 지원할 전망이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아들인 신유열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고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자리에 앉혔다. 해당 부서는 그룹의 중장기 비전 달성과 글로벌, 신사업 발굴·확대를 위해 이번에 신설됐다. 1986년생인 신 전무에게 주어진 책임이 그만큼 막중하다는 방증이다.
신 전무는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도 겸직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신성장동력 중 한 축인 바이오의 핵심 사업회사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6월 설립된 이후 같은 해 12월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했고 올해 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총 36만리터(ℓ) 규모의 바이오 플랜트 건설을 위한 토지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신 전무는 앞으로 이런 롯데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힘을 실을 방침이다.
한화그룹은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김 본부장은 1989년생으로 김승연 회장 삼형제 중 가장 늦게 경영수업에 돌입했다. 다만 빠른 승진으로 형인 김동관 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김 본부장은 올해 3월 한화갤러리아 독립법인 출범과 함께 홀로서기에 나섰다. 이후인 6월에 미국 3대 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를 국내에 성공적으로 론칭한 데 이어 10월에는 로봇전문기업 ‘한화로보틱스’ 설립을 주도했다. 김 본부장은 이미 자리 잡은 유통 사업의 안정화를 이끈다. 동시에 2025년 6조4500억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협동로봇 시장에서 한화로보틱스의 점유율 확대에 팔을 걷어붙일 것으로 기대된다.
GS그룹은 허서홍 부사장을 GS리테일 경영전략SU(Service Unit)장으로 발탁했다. 허 부사장은 1977년생으로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이다. 이번에 전무로 승진한 허진수 GS칼텍스 상임고문의 장남인 허치홍 GS리테일 MD본부장과 오촌지간이다.
허 부사장은 경영지원본부와 전략부문, 신사업부문 등의 조직을 모아 신설된 경영전략SU를 관장한다. 이를 통해 온·오프라인 유통 기업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GS리테일의 사업 경쟁력 확보와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실제 허 부사장은 (주)GS 미래사업팀장으로 역임할 당시 그룹의 신성장동력 발굴과 투자전략을 지휘하며 신사업 연계와 사업화 실행력을 입증한 바 있다.
삼양그룹은 김윤 회장의 장남인 김건호 경영총괄사무를 지주사인 삼양홀딩스 사장으로 신규 선임했다. 김건호 사장은 1983년생이다.
김 사장은 전략총괄로 그룹의 성장전략과 재무를 책임진다. 특히 ‘글로벌 스페셜티(고기능성) 기업 도약’이라는 비전 달성을 위한 반도체, 2차 전지 및 퍼스널 케어 소재, 차세대 대체 감미료, 생분해성 봉합사 등 그룹의 핵심 스페셜티 사업을 진두지휘한다. 그룹은 이에 발맞춰 경영전략·재무관리 역량을 강화하고자 삼양홀딩스 내 전략총괄과 재경기획PU(Performance Unit)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올해 이 같은 재계 움직임에 대해 위기 속 혁신을 위한 책임경영 강화에 방점을 둔 인사라는 평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오너가 3·4세들이 기존 사업에 머물지 않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며 “책임경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혁신을 꾀할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혁신 모멘텀이 나오면서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했다”면서 “지배주주(오너)가 전방에 나서면서 역량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좀 더 강한 산업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아일보] 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