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력 포트폴리오 정리…경쟁력·효율성 제고
경영 불확실성 심화 속 내년 전략 '시선집중'
롯데가 심화되는 경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경영을 선포한 이후 사업경쟁력과 경영효율성 강화에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이며 홍역을 치르는 가운데 롯데는 체질개선 차원의 비주력 사업정리에도 나섰다.
재계 안팎은 ‘강력한 실행력’을 당부했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내놓을 2025년 신년사에 주목한다. 롯데의 2025년 전략이나 방향성을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기 때문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올해 6월 롯데온(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을 시작으로 롯데면세점(호텔롯데 면세사업부), 세븐일레븐(코리아세븐), 롯데호텔앤리조트(호텔롯데 호텔·리조트사업부) 등은 잇달아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여기에 롯데면세점은 면적축소 등 지점별 리포지셔닝(재조정)을 추진 중이다. 롯데백화점(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은 올해 3월 비효율 점포를 중심으로 한 리포지셔닝을 공식화했다. 이에 올해 6월 롯데백화점 마산점이 문을 닫았고 현재 부산 센텀시티점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각 계열사의 이 같은 행보는 모두 수익성 제고를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롯데온은 2020년 출범 이래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롯데면세점은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전환에도 업황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고물가·고환율 등까지 겹친 게 발목을 잡았다. 세븐일레븐은 2022년부터 올 3분기까지 3년째 적자다. 롯데호텔앤리조트도 면세점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적자의 늪에 빠진 모양새다. 롯데백화점은 업계 1위지만 점포당 매출을 따졌을 경우 신세계·현대보다 점포당 매출이 최대 4분의1 수준으로 낮을 뿐 아니라 고급이미지도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유통사업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을 이룬 화학사업의 부진이 뼈아프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들어서만 6600억원대의 적자를 냈다. 4분기 포함 올해 롯데케미칼 영업손익 컨센서스(시장전망치)는 8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약 35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게다가 차입금(외부에서 빌린 돈)은 올해 3분기 말 기준 10조7490억원에 이른다. 순차입금비율은 36.1%로 일반적인 기업 적정 순차입금비율인 20% 이하와 비교해 2배가량 높은 수치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여수·대산공장 원가절감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여수 2공장 일부 생산 라인 운영을 중단했다.
롯데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자 올해 8월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또한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그룹의 중장기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정리도 추진한다. 핵심사업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는 동시에 바이오·AI(인공지능) 등 신사업 투자를 통한 성장을 꾀한다는 복안이다. 롯데가 글로벌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호텔롯데·부산롯데호텔 보유 롯데렌탈 지분 56.2%를 1조6000억원에 매각하는 MOU를 체결한 것도 그 일환이다. 롯데는 롯데렌탈이 업계 1위로 우수한 수익성을 내지만 그룹의 성장전략과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롯데는 대신 전기차 충전과 자율주행 등 기술 기반의 모빌리티 사업을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12월을 끝으로 롯데헬스케어를 철수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롯데헬스케어는 건강관리 플랫폼 ‘캐즐’ 서비스를 이달 26일자로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신 회장은 이에 더해 ‘2025년 임원인사’를 통해 고강도 인적 쇄신도 단행했다. 롯데는 화학군과 호텔군 등을 중심으로 전체 CEO(최고경영책임자)의 36%인 21명을 교체했다. 임원 규모도 지난해 말 대비 13% 축소됐다. 화학군에서만 60대 이상 임원의 80%가 물러났다. 신 회장은 이와 함께 연말 정기 임원인사 체제에서 수시 임원인사 체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성과 기반 적시·수시 임원 영입과 교체를 통해 경영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런 가운데 신 회장은 자신의 아들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때문에 재계의 이목은 신 부사장이 그룹 내 미래사업과 글로벌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성과를 창출해 체질개선 및 성장동력 확보라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에 쏠린다. 오너 3세라는 이유만으로 승진한 것이 아니라 핵심사업의 글로벌 시장개척을 주도하면서 그룹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등 실제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더불어 재계는 신 부사장의 지분확대에도 주목한다. 신 부사장은 올해 6월5일 처음으로 롯데지주 주식 7541주를 사들인 데 이어 9월4일 4255주, 12월4일 4620주를 각각 매수했다. 이로써 신 부사장의 지분율은 0.02%가 됐다.
재계는 무엇보다 약 한 달 후에 나올 신 회장의 ‘2025년 신년사’에 관심을 내비친다. 신년사는 사전적으로 ‘새해를 맞아 하는 공식적인 인사말’이다. 신년사는 오너(총수)가 그룹에 소속된 임직원은 물론 관련 산업 등 시장 전반에 던지는 핵심메시지로 2025년 한 해 동안 롯데가 나아갈 이정표 혹은 지침 역할을 한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는 압도적 우위의 핵심역량을 가진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며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할 수 있도록 사업구조도 과감히 개편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성장을 위해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미래 사업역량을 가려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며 “AI를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 기술투자를 더욱 강화하고 창조적 파괴를 통해 끊임없이 혁신한다면 기회의 창은 반드시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하반기 VCM(옛 사장단회의)에서는 “그룹 전체가 경영환경 변화를 주시하며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지속가능 성장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라는 경영목표 달성과 혁신할 기회가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강력히 실행해 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