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은 장기근속…"중·장기 전략 세대교체 필요"
시중은행장 임기가 점차 짧아지고 있다. 2020년대 들어 3년 이상 재임한 시중은행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통상 은행장 임기는 기본 임기 2년에 연임 시 추가 임기 1년이 붙는 ‘2+1’ 형태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이 공식을 따른 행장이 보기 드물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시중은행 차기 은행장 인선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KB국민·신한·우리은행은 차기 행장을 사실상 확정했고, 하나·NH농협은행은 이달 중순께 발표할 예정이다.
이날까지 연임이 확정된 시중은행장은 정상혁 신한은행장뿐이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정 행장은 이례적으로 2년 추가 임기를 부여받았다. 정 행장이 두 번째 임기까지 무사히 마무리한다면 총 3년 10개월 재임하게 된다.
이재근 KB국민은행장은 비록 3연임에는 실패했지만, 2022년부터 올해까지 총 3년간 은행을 이끌며 비교적 장수 행장 반열에 올랐다.
반면 다른 은행은 전·현직 행장을 뒤져봐도 임기가 3년이 채 안 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경영 상황이나 내부 지침, 각종 이슈 등 대내외 악재로 연임에 실패하는 경우가 잦은 탓이다.
더욱이 시중은행장 인사에는 금융지주 회장 영향력이 큰 만큼, 새 회장이 부임하거나 회장 경영 전략이 바뀔 경우 은행장이 교체되는 경우가 잦다. 이 때문에 4년 넘게 재임한 시중은행장은 전무한 수준이다.
실제 지난해 7월 취임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재임 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올해 말 임기 종료 후 자리에서 물러난다. 재임 중 각종 금융사고가 발생하며 내부통제 미흡 책임론이 불거져 연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조 행장 전임인 이원덕 전 우리은행장은 지주사 회장이 바뀌면서 용퇴해 1년4개월만 재임했다. 그 이전에는 권강석 전 우리은행장이 연임 없이 2년 기본 임기만 채우고 물러났다.
NH농협은행은 이석용 행장이 연임 없이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임기 중 금융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했고, 농협은행 자체적으로도 그동안 행장 연임에 인색한 기조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은 2020년 이전까지는 은행장의 기본 임기가 1년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이대훈 전 농협은행장은 이례적으로 3연임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임기는 3년에 머물렀다. 2020년부터는 농협은행장 기본 임기가 2년으로 늘었지만, 손병환·권준학 전 행장 등 연임에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다.
하나은행 역시 행장 연임이 드물다. 2015년 외환은행과 합병 이후 함영주 초대 통합은행장(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한 차례 연임을 통해 총 3년 6개월 재임했지만, 이후 지성규·박성호 전 행장은 추가 임기를 받지 못하고 2년만 행장직을 수행했다.
특히 국내 시중은행장의 임기는 외국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비교했을 때 매우 짧은 편이다. 미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2005년 취임해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과 비교해도 차이는 확연하다. 박종복 SC제일은행장은 2015년 행장직에 올라 올해까지 총 9년을 재임한다. 한국씨티은행도 하영구 전 행장이 10년 임기를 채웠고, 후임인 박진회 전 행장, 유명순 현 행장도 6년을 부여받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장이 장기 재임을 하면 차기 행장 후보 인사 적체가 발생하고 행장 고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중·장기 경영 전략은 금융그룹 차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행장은 주기적인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